“재정자립도를 낮춰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실무진에게 재정자립도를 낮추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함안군의회 제85회 임시회 군정질문에서 한 군의원이 재정자립을 위한 자주재원 확충방안을 밝히라는 요구에 대해 진석규 함안군수가 대답한 내용이다.

언뜻 듣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이어진 대답에서 궁금증이 풀린다.

“재정자립도가 향상된다고 하는 것은 두가지 부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 재정자립도가 높은 군은 지방교부세 책정때 손해를 보게됩니다. 또 하나 향후 정부는 재정자립도가 높은 군에 대해서는 지방비부담을 증가시킬 계획입니다.”

광역자치단체나 중앙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조금이라도 더 얻어내기 위해서는 재정자립도를 낮출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2000년 11월1일 개정된 경남도보조금관리조례 제9조는 보조금의 차등보조율 적용을 규정하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높은 상위 30%의 기초자치단체와 하위 30%의 자치단체에 대해 보조금을 차등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재정자립도를 낮출 수 있을까.

간단하다. 재정자립도는 전체예산에서 의존재원(양여금.교부세.국고보조금)을 제외한 자체재원(지방세.세외수입.지방채)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재정자립도는 정부로부터 양여금 등을 많이 얻어오면 자연적으로 낮아진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재정자립도를 낮추기 위해서 정부에서 예산을 많이 얻어와야 하고, 정부에서 예산을 많이 얻어오게 되면 상대적으로 재정자립도가 낮아져 다음해에는 더 많은 예산을 얻어올 수 있다는 계산이다.

올해 총예산이 1335억원인 함안군은 경남도내 군단위 기초자치단체중에서는 재정형편이 가장 나은 축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한푼이라도 더 얻어오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민생에 필요한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하려다 보니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선 시.군에서는 사업계획을 수립해 도나 정부부처에 사업계획 승인을 신청해두고 이를 승인받고 사업비를 얻어내기 위해 발바닥에 땀나도록 정부부처를 드나들면서 로비를 벌여야 한다.

이정률 함안부군수는 “4월 중순에도 문화관광부를 방문해 특정사업 승인과 사업비 11억원을 내락받았다. 5월말께 또 한번 서울을 다녀올 것이다. 중요한 사업이 있는데 지방세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는 관계부처를 설득해 꼭 승인을 얻어야 된다”며 “단체장이나 부단체장이 그렇게 뛰어도 인맥이 없으면 사업승인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함안군은 그래도 그럭저럭 실적이 좋은 편이다”고 말했다.

이 부군수는 2000년 한햇동안만 정부부처 방문을 위해 10여차례 서울을 다녀왔으며 월평균 1회 이상 정부부처를 방문하고 있다.

“실과장이나 담당계장들이 정부부처를 오르내리며 어느정도 작업을 벌여놓으면 단체장이나 부단체장이 방문해 확인사살한다. 단체장이나 부단체장이 방문하지 않으면 아무리 시급한 지역현안이라 해도 먹혀들지 않는다.”

하나의 특정사업을 승인받고 사업비를 따내기 위해서는 자치단체장과 부단체장이 정부부처의 실무진에게 수없이 얼굴을 내밀고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는 얘기다. 기초자치단체의 열악한 재정형편과 쥐꼬리에 비유되는 권한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자 지자체의 현 위상이 ‘자치’라는 말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입증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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