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기슭 옹기종기 나지막한,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슬레이트 지붕의 촌가와 수로. 멀리 배경을 이루는 고층 아파트 단지 그리고 몇점의 구름. 더 이상 서정적이지 않다.

지난 몇십년간 줄달음치듯 매진한 근대화나 선진화가 낳은 양면도 이제는 아니다. IMF를 맞아 몸부림치는 동안 우리 사회에서 더욱 공고화되는 빈부의, 양극화의 거리를 가늠케 하는 시각으로 자리잡고 있다.

팍팍한 인생살이에 투영된 앵글의 거리만큼 멀게 느껴지는 한숨이다. 떠밀리듯 공룡 같은 성곽으로 가야하는 많은 이의 시선은 한길밖에 없는 수로와 미풍에도 날려가 사라질 것 같은 구름에 머문다. 허리를 굽혀 새로운 길을 찾지만 시멘트길 수로만 버티고 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