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획일 생색내기 행사는 그만


제79회 어린이날이었던 지난 5일 아이들의 동심을 잡기 위한 행사가 도내 곳곳에서 열렸다.

도나 시.군 단위의 대규모 행사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몇년 전에 비해 요즘은 소규모 단체가 주관하는 말 그대로 ‘동네잔치형’의 행사나 소외된 아이들에게 눈을 돌린 행사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 특징이다.

이는 행사 프로그램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행사들은 여러 해를 거듭해오면서도 여전히 천편일률적이고 나열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요즘같이 볼거리.놀거리가 다양해진 시대에 ‘어린이 날’이라고 해서 캐릭터 인형 몇 개 세워 놓고 아이들을 박수부대로 만드는 식의 안일한 기획 행사는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경남 어린이 큰잔치

5일 오전 10시 창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경남 어린이 큰잔치’.

올해로 24회째를 맞이한 ‘경남 어린이 큰잔치’는 20년을 훌쩍 넘긴 만큼 도내의 가장 대표적인 어린이날 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지난해와 올해만 비교해도 프로그램이나 진행에 변화를 찾아보기란 힘들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여전히 아이들끼리 혹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놀이 하나 없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가장 큰 불만이다.

군악대의 팡파르와 함께 시작되는 개회식. 이어지는 국민의례와 대회사.축사.격려사는 행사의 경직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해마다 특별한 기준이나 설명없이 몇몇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모범 어린이 표창은 관람 온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는 것.

그래서인지 관람석에 3시간여를 앉아 있어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부모들은 쉴새없이 먹을 것을 사다 나르고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뛰어다니는 등 산만한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4살과 8살짜리 아이와 함께 온 김명선(34.창원시 신월동)씨는 “집에서 가까워 아이들과 함께 왔는데 막내는 조명이나 분위기가 신기해서인지 곧잘 쳐다보고 있는데 큰아이는 지루해 한다”며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의 관람을 배려해 모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 아이를 둔 박문석(40.마산시 구암동)씨는 “둘째 애가 자꾸 나가자고 보채 공연이 끝나면 야외로 다시 나갈 계획”이라며 “처음 왔는데 내년에는 일찍 서둘러 놀이공원에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같은 프로그램이 아이들 시선을 끌지 못한다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밖에서 또래들끼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풍선 등을 파는 장사꾼들 앞에 아이들이 모이는 것이 입증해주고 있었다.

행사관계자는 “자체평가를 통해서도 몇년째 안일한 기획이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어린이날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행사가 열려 섭외의 어려움이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내년부터는 새로운 기획을 준비중이다”라고 말했다.

야! 나온나, 노올자

같은 시각, 창원기계공고 운동장.

참교육 학부모회 마.창.진 지부(지부장 김지란)가 어린이날을 맞아 개최한 ‘야! 나온나, 노올자!’ 행사가 열렸다.

행사장은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놀이마당으로 꾸며져 있었다. 놀이마당은 하나같이 아이들이 손수 해보면서 느낄 수 있는 것들. 물론 함께 어울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제약은 없었다.

굴렁쇠.투호.제기차기.신발 멀리 차넣기를 할 수 있는 전통마당과 물감과 색연필 등으로 마음껏 표현해 볼 수 있는 미술마당이 마련돼 있었고, 카드 뒤집기 등 준비된 게임을 즐기는 마구잡이 놀이마당과 각종 과학원리를 알 수 있도록 꾸민 신나는 과학마당도 옆자리에 이어져 있었다.

본부석 맞은 편 오른쪽 구석에는 목발.안대.휠체어 등으로 장애체험을 하는 순서도 마련돼 있었다.

또 왼쪽에는 아이들의 글과 그림으로 꾸민 작품과 어린이 책, 짚.풀 작품이 전시돼 있고, 그 옆에는 어린이들을 태울 다섯 마리 말들이 준비돼 있었다.

행사에 참석한 아이들 1000여 명은 빨강.노랑.초록.파랑 등 색깔에 따라 넷으로 갈라 팀을 이루어 차례대로 준비한 놀이와 실험을 하며 즐거워했다.

페인팅으로 얼굴과 팔을 알록달록하게 물들인 아이들은 도화지와 풍선에다 색칠을 하거나 자기의 생각을 글로 적어 넣었다. 신발을 멀리 차 던지기도 하고 처음 만져보는 굴렁쇠를 굴리지 못해 쩔쩔 매기도 했다.

요구르트 병에다 모래와 화학약품을 넣어 뽀글뽀글 끓어오르는 ‘화산폭발’ 실험도 직접 하고 여럿이 함께 하는 집단 줄넘기를 하면서도 즐거워했다.

학부모회가 제공한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한 학부모와 어린이 1500여 명은 곧바로 다함께 춤을 추며 문화마당에 이어 놀이마당.대동놀이 한마당 행사도 가졌다.

두 편으로 나눠 줄다리기도 했으며 ‘수수께끼 동서남북’이란 퀴즈놀이도 즐겼다. 때로는 재미를 더하기 위해 잘하는 팀에게는 1000점을 주기도 하고 못한 팀의 점수를 깎기도 했지만 말뿐이었다. 1등을 뽑지 않은 것이다.

행사 진행을 맡은 선생님들은 틈날 때마다 아이들에게 ‘장애체험’을 하도록 했다.

운동장 한켠에 경남승마협회가 마련한 말타기 마당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조그만 동그라미를 그리고 한 바퀴 돌아오는 정도였지만, 제 키보다 두세 배는 되는 높다란 말안장에 앉아보는 게 처음인지라 무척 즐거워했다.

참교육학부모회 관계자는 “앉아서 구경만 하고 손뼉이나 치는 것보다는 직접 뛰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주로 준비했다”며 “참석자들도 어려운 집안 어린이와 장애인 등 상대적 소외계층을 위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학부모 이모(여.38.창원시 용호동)씨는 “운동장 곳곳에 놀이판을 펼쳐 놓아 어른들 눈에는 산만해 보일 수도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즐겁게 놀 수만 있으면 좋은 것 아니냐”며 “지난해보다 행사진행 인력도 많아지고 장애체험마당이 새로 생기는 등 내용도 알차졌다”고 평가했다.



소외된 아이들과 하나된 잔치

참교육학부모회 마.창.진 지부의 2001 어린이날 놀이 한마당 ‘제8회 야! 나온나, 노올자!’에는 미래교육연구회 소속 유치원 10곳의 아이들과 저소득층 아이들을 상대로 무료로 공부와 공동체 생활을 가르치고 있는 ‘샘동네공부방’(마산)과 ‘민들레공부방’(창원)의 어린이 70여 명이 초청됐다.

또 경남 혜림학교의 장애인 학생들과 초등학교에 공문을 보내 추천을 받은 저소득층 어린이들도 이날 어린이 행사에 초청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참교육학부모회에서 기업의 협찬을 받아 제공한 버스를 타고 행사장으로 모였다.

이밖에 광고와 홍보물을 보고 제발로 찾아온 아이들과 학부모도 많았다.

화산폭발 실험을 하던 한 어린이는 “물 비슷한 것을 넣었을 뿐인데도 모래가 요구르트 병에서 보글보글 끓어넘치는 게 신기해요”라고 말했다.

옆에서 휠체어를 타보고 있던 초등학교 3학년 아이는 “휠체어를 밀다 보니 팔이 아프지만 재미는 있다”고, 기대와는 달리 엉뚱한 대답을 하기도 했다. 안대로 눈을 가렸던 아이가 옆에 있다가 “눈으로 볼 수 없으니까 참 갑갑해요. 장님은 너무 불편하겠어요” 한다.

아이들은 행사장에서 자유로웠다. 쉬고 싶을 때 밖으로 나와 자리에 앉아 쉬어도 뭐라는 사람도 없었다.

행사를 다 마치고 잠자리채와 공책 등 선물을 받아 챙긴 김성훈(초등 5년)군은 “이렇게 즐거운 어린이날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기회만 된다면 내년에도 또 참석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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