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의 한파가 채 가시기 전 또다시 ‘제2의 경제위기’가 불어와 서민들은 더욱 심란해졌고, 올 한해 우리 지역의 문화 ‘키워드’는 마음 둘 데 없는 이들을 위한 것들로 채워졌다.



향수 자극하는 복고술집



<홍도야 울지 마라> <박통면옥> <엽전 열 닷냥> 등 복고 술집이 부쩍 늘어 구조조정이다 명예퇴직 등으로 힘든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마음을 달래주는 위안처가 되었고, 올 상반기 불어닥친 벤처 열풍은 ‘거품론’이라는 경계령에도 불구하고 도내에서만 1998년 98개에서 2년 사이 약 2.5배(12월 현재 214개)가 늘어 ‘벤처 신드롬’이란 단어를 만들어 냈다.



386·475 세대로 분류되는 이들이 시름을 잊기 위해 술집으로 혹은 ‘대박’을 위해 주식과 복권, 벤처기업으로 눈을 돌릴 때 젊은이들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뉴미디어 열풍에 휩쓸려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갔다.



인터넷 검색 빈도 1위‘엽기’



이들이 개척해 낸 올 한해 최고의 문화 키워드는 ‘엽기’. 이미 젊은이들 사이에는 ‘상상치 못한 황당한 일’정도로 통용되고 있는 엽기는 엽기 사진, 엽기 동영상, 엽기카드, 엽기 유머, 엽기 카툰, 엽기 게시판, 엽기 하우스, 엽기 콘서트 등 올 한해 엽기를 다루는 사이트가 1만여건에 이르고, 각종 검색 사이트의 검색어 빈도 1순위에 ‘엽기’가 올라갈 정도로 신드롬을 낳았다. 이는 출판·영화 등 다른 문화와도 연계돼 ‘엽기적인 시인’이라는 별칭이 붙은 김언희(48)씨의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2000년·민음사)가 출간되었고, 251명의 남자와 섹스를 나눈 한 여성을 통해 남성주의 세상에 반기를 든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영화 〈섹스, 애너벨 청 스토리〉 등이 모습을 보이는 등 올 한해는 엽기적으로 흘렀다.



‘러브레터’와 ‘가을동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엽기 세상’과 함께 <가을동화>류의 ‘순정 세상’도 공존했다.



올 초 맑고 순수한 사랑이야기를 그린 이와이 순지 감독의 〈러브레터〉나 장인정신을 담았던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의 〈철도원〉 등이 사랑을 받으며 조짐을 보이던 ‘순수’세계는 올 가을 푸른 벌판과 파스텔톤의 배경과 함께 찾아온 KBS <가을동화>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드라마속의 소재들은 금세 젊은 연인들 사이에 응용돼 영화관이나 비디오 방·PC방을 전전하던 젊은 연인들은 드라마 배경이 되었던 장소나 강촌 등으로 데이트 코스를 바꾸었고, 거리를 휩쓸고 다니던 품이 넓은 힙합바지는 어느새 여주인공이 입었던 월남치마로 바뀌어 심심찮게 모습을 보였다. 이와 함께 순정만화도 붐을 일으켜 지난 11월 만화가 천계영의 <오디션>이 순정 만화로는 처음으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에 들어가 내년 초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

비주류‘인디’가 주류로



뉴 미디어 열풍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문화는 바로 소수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것. ‘대자본으로부터의 독립’된 그 무엇을 의미하는 인디가 네티즌 사이에서 여타의 단어들과 합성돼 비주류에서 주류문화로 올라왔다.



이는 제도권의 대자본과 상관없이 영세하지만 소자본으로 무언가를 해내던 인디들이 이젠 뻔한 것을 거부하고 틀에 박힌 것을 거부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취향과 맞물려 주류문화들도 인디와 영합해가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동호회나 카페 등이 활발하게 생겨 자신과 같은 취미나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동지’들을 찾아나서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동성애자의 인권찾기’수면 위로



이와 함께 약자요 소수였던 ‘동성애자들의 인권 찾기’가 더욱 활발해진 것도 올해의 두드러진 현상.



96년 서동진씨가 최초로 커밍아웃을 선언한 후 언더 문화권속에 내재돼 있던 동성애자들의 목소리가 올해는 수면위로 떠올라 2000년은 그동안 ‘기성문화’와 ‘애들문화’로 나뉘어 있던 이분법적 구도가 무너지면서 주류와 비주류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지고, 소외된 사람들의 문화 콘텐츠 찾는 작업이 활발한 한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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