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차가 없어 버스나 택시를 자주 이용한다. 그래서 택시기사들과 얘기를 나누는 일이 많은데, 시민운동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결국은 시장이나 국회의원 한자리 해보려고 그러는 것 아니요·”“자기들이 무슨 돈으로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다 정부 돈 받아서 하는거죠. 결국 현 정부 앞잡이 아니요·”
마창진참여자치시민연대가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중인 김인규 마산시장 퇴진운동을 벌일 때도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또 열린사회 희망연대가 마산시의회의 잇단 비리추문을 규탄하고 나설 때도 마산시와 시의회 게시판에 시민단체 간부의 출마설과 재정문제 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물론 시민운동에 대한 이같은 인식은 대부분 과장된 것이고, 심지어 음해에 가까운 내용도 적지 않다. 그러나 시민운동이 이같은 시민들의 ‘오해’를 살만한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는 없다.
실제로 시민운동가가 어느날 갑자기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예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의 예이기는 하지만 한 환경운동가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행정관으로 들어간 후 지난 총선에서 공천을 받으려 했으나 실패하자 다시 시민운동가로 복귀하기도 했다. YMCA 전국연맹 사무총장까지 맡았던 한 시민운동가는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관변단체인 새마을협의회장으로 들어갔고, 심지어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이사까지 맡아 물의를 빚었다. 광주에서도 지난 총선 당시 총선연대에 관여하던 한 시민운동가가 정당공천을 신청해 말썽을 빚기도 했다.
경남지역에서도 시민운동가로 행세하던 사람들이 총선이나 지방의원 선거에 출마한 경우는 적지 않았고, 여성의 정치권 진출을 명분삼아 여당공천에 줄을 대는 경우도 없지 않다. 또 시민운동가들과 인맥을 유지하고 있는 한나라당 소속 도의원의 선거운동에 일부 시민운동가들이 깊이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경우가 모두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여전히 이중적이고 이기적인 의식에 머물러 있는 시민들에게 이런 모습이 시민운동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총선연대가 내세웠던 ‘정치적 중립성’은 시민들의 이같은 이중적 기준을 의식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시민단체는 그 어떤 세력보다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때묻지 않은 시민운동가가 제도 정치권에 진출하여 정치개혁에 앞장서는 게 왜 나쁜가. 오히려 노동자후보나 시민운동후보가 더 많이 나와 썩은 정치권을 물갈이해야 하는 게 아닌가.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건 절반만 옳다. 그동안 우리는 ‘개인’차원에서 기존 정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에 진출한 명망가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제대로 정치개혁에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선 대부분 부정적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운동을 정치권 진출의 발판으로 삼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나 유럽에서도 시민운동가의 정치권 진출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몸담았던 시민단체를 떠나는 일은 흔치 않다. 오히려 철저히 시민단체의 조직인으로서 단체의 이념과 목표에 따라 정치활동을 수행하는 것이다. 최근 일본 시민단체 견학을 다녀온 마산YMCA 이윤기 부장도 “시민운동가가 지방의회 의원에 당선됐다고 해서 시민단체를 떠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의원 봉급을 자신이 소속된 단체에 내고 활동비를 다시 받아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총선연대의 활동을 통해 낙선 후보자 86명 중에서 66.3%가 낙선했고, 중점 낙선대상자 22명 중에서 15명인 69.2%가 선거에서 패배했다. 이에 따라 외형적으로는 16대 국회가 상당히 물갈이된 것처럼 보이지만 15대 국회와 어떻게 다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이에 따라 ‘10명의 낙선보다는 1명의 노동자 후보 당선이 민주주의의 진전에 더 필요하다’는 말도 설득력있게 들린다.
시민운동가의 정치권 진출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반드시 이뤄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조직적 차원의 진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시민운동을 등지고 제도정치권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시민단체가 공식적으로 후보는 내는 형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후보를 내는 시민단체는 적어도 정당에 버금가는 정책능력을 갖고 있는 단체여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야 당선 후에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 경우 민주노동당도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 그리고 최근 서울에서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같은 정치조직에 대한 논의가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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