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는 남녀 관계가 평등한 편이었고, 감정 표현도 솔직했다. 이는 조선 초기까지 이어졌다.

고려가요 만전춘(滿殿春)은 “얼음 위에 댓닢 자리 보아/ 임과 나와 얼어죽을망정/ 정 둔 오늘 밤 더디 새어라// (……)// 남산에 자리 보아/ 옥산을 베고/ 금수산 이불 안에/ 사향 각시를 안고 누워/ (사향)약든 가슴을 맞추십시다/ 길고 긴 한 평생 이별 모르고 지냅시다” 하고 사랑을 표현한다.

구체적인 성행위를 그려 놓지는 않았지만, 얼어죽을 각오로 러브호텔도 아닌 데서 한 판 사랑놀음을 벌이자는 내용, 그것도 (현대의 상상력으론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자연을 깔고 덮고 한 평생 이별 모르고 지내자는 배짱이 정말 굉장하다.

같은 시대의 쌍화점(雙花店)은 당대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욱 대담한 내용을 담고 있다.

쌍화점은 만두 가게인 바, “만두가게 만두 사러 갔더니 회회(回回) 아비가 내 손목을 쥐더라.(1연)” 아라비아 사람으로 짐작되는 회회 아비가 드나드는 가게에 무엇 하러 갔을까. “삼장사에 불을 켜러 갔더니 절 사주가 내 손목을 쥐더라.(2연)” 손목을 쥐고 당긴 스님과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심지어 “들에 있는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 우물의 용이 내 손목을 쥐더라.(3연)”, “술집에 술을 사러 갔더니 그 집 아비도 내 손목을 쥐더라.(4연)” 가는 데마다 ‘나는 손목을 잡힌다’. 후렴으로 되풀이되는 “나며 들며 나도 자러 가리라”는 또 무엇인가.

이상곡(履霜曲)도 남녀간의 사랑 노래다. “잠을 앗아간 내 님을 생각하는데/(……)//때때로 천벌을 받아 지옥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이 내 몸이/내 님 두고서 다른 산에 오르겠는가요.” 이 노래는 후렴구 “마득사리 마득너즈세 너우지”를 달고 있는데, 학계는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움직임이 느껴진다”는 해설을 덧붙인다.

하지만 조선시대 선비들은 남녀간의 사랑을 숨김없이 다룬 고려가요를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라는 딱지를 붙여 이미지를 더럽히거나 바꾸거나 없애버렸다.

성종 19년(1488년) 이세좌가 “고려가요는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가사여서 지극히 불가하므로 배우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적어 올렸다. 이들 노래는 고려뿐 아니라 조선의 궁정에서도 연주됐으나 이때부터 모두 음사(淫辭)로 취급돼 사라져야만 했다.

사람 성정의 자연스런 표현을 힘으로 누르겠다는 정치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시건방짐이 지금뿐 아니라 500년 전에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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