펴낸 경상대 정진상 교수

   
 
 
5일 앞으로 다가온 수능시험. 수능점수 1점에 임금이 0.5% 차이 난다는 ‘행복은 성적순’인 대한민국에서 아이들은 D-Day가 두렵기만 하다. ‘3년 고생하고 3년 해피하자’고 입시지옥을 함께 건너온 가족들도 예외일 수 없다.

그들 역시 매일 같이 ‘학벌사회’의 이익 혹은 불이익을 온 몸으로 겪고 있기 때문이다.

‘입시 지옥과 학벌사회를 넘어’라는 부제를 단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책세상)는 이렇듯 고착화된 한국의 교육현실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설파한다.

물론 당장 성취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방안이며, 무엇보다 ‘실현 가능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경상대학교 정진상(46. 사회학) 교수에게 그 희망의 전언들을 들어보았다.

-입시 제도와 학벌 사회에 주목한 까닭이 있다면.
△아이들은 태어나 20년 가까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지요. 그런데 ‘입시지옥’이라 불리는 우리나라의 유별난 입시 경쟁 때문에 학부모들도 같은 기간 동안 아이들 교육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교육문제라고 할 수 있지요.
따져봅시다. 무한 입시경쟁으로 학생들은 ‘학습 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학부모들은 사교육비를 대느라 진땀을 빼고 있습니다. 초·중등 학교는 원래 기능을 잃어버리고 입시 교육장이 되고, 사설학원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습니다. 대학은 대학대로, 학문하는 본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학벌 좋은 졸업장 따는 곳으로 변질돼 버렸지요. 결국 교육의 이러한 총체적 모순의 주범이 대학입시제도와 그것을 규정하는 학벌주의라는 데 주목한 겁니다.

-그러나 입시지옥과 학벌사회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해묵은 문제라 “또 그 얘긴가”하는 반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 책이 입시제도를 비판한 다른 책과 차별화할 수 있는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35번이나 바뀐 입시제도는 본질을 회피하고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입시제도의 본질은 서울대를 정점으로 만들어져 있는 획일적인 대학서열체제입니다. 대학서열체제 아래에서는 60여 만 명의 학생들이 한 단계라도 높은 서열의 대학에 입학하려고 하기 때문에 무한경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은 문제의 본질인 대학서열체제에 정면으로 대결해 이를 바꿔 나갈 수 있는 전면적이고 구체적인 개혁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책과 다르다고 봅니다.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라는 것이 제기한 문제의 실천 가능한 방안이라 했습니다. 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며,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란 서울대를 포함한 전국의 국립대학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고, 고교내신 성적과 대학입학자격시험으로 입학생을 공동 선발하는 개방형 입학제도를 핵심적인 내용으로 삼고 있습니다. 몇 가지 장치를 도입하면 일정 수준이 되는 사립대학들도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 편입할 수 있습니다.
대학 입학의 문호를 개방하여 무한입시경쟁을 없앰으로써 초·중등교육을 정상화하고, 대학에서는 학사관리를 엄격하게 하여 졸업을 어렵게 함으로써 대학교육을 내실화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입니다. 여기에는 학부제와 전문대학원(법학·의학·경영학·교육학 등) 설치, 고시제도의 폐지와 지역균형인재등용제도의 도입 등 이 개혁안이 작동하기 위한 여러 부대적 조치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들어가는 말에 ‘인간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을 제기한다’라는 인용구는 학벌사회 타파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동시에, 정말 풀 수 있을까라는 연구자의 반신반의가 잠재돼 있다는 느낌입니다.
△마르크스의 이 인용문은 인간의 문제 해결능력을 강조하기 위해 쓴 대목입니다. 입시지옥으로 나타나는 현재의 교육의 총체적 모순은 거의 한계점에 도달해 있습니다.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조사에 의하면 압도적인 다수의 국민들이 대학서열체제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든 개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교사들이 전교조를 중심으로 초·중등교육 개혁의 걸림돌인 대학입시와 대학개혁을 의제로 설정하여 투쟁에 나서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로서는 학벌사회와 대학서열체제를 고수하려는 기득권층의 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우리 개혁안을 당장 실현하기는 힘듭니다. 교사·교수·학생·학부모 등 교육주체들이 참여하는 교육운동이 시민운동 및 노동운동과 결합하는 사회운동을 벌이고 최종적으로는 다수 국민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부의 수립을 통해 우리 개혁안을 실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 평준화가 ‘하향평준화로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것 아니냐’‘새로운 서열을 만드는 것이 아니냐’ 등의 의문이 입니다.
△‘대학 평준화’라는 말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중등교육과 달리 대학교육은 기본적으로 전문교육이기 때문에 글자 그대로 평준화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학 평준화’란 입학생들의 수준과 대학의 물질적 조건을 평준화한다는 의미로 한정된다는 점을 지적해두고자 합니다. 지금과 같은 획일적인 대학서열체제에서는 입학 때만 경쟁이 있고 대학교육 과정에서는 경쟁이 일어날 요인이 없습니다. 대학이 평준화되면 다양성 속에서 대학들 사이에 경쟁이 일어나고 자연스럽게 분야별로 특성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대학간판에 의한 획일적인 서열화가 아닌 다양한 분야별 서열화는 학벌주의를 없애고 학문 경쟁력을 끌어올릴 것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실천적인 대안을 찾기 위한 연구자들의 노력이 참 높게 보입니다. 입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논리적, 실천적 근거와 대안을 공부하는 모임들을 소개해주시지요.
△지금까지 대학 평준화를 의제로 하는 대학개혁운동은 두 방향에서 전개되어 왔습니다. 하나는 학벌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학벌없는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학벌타파운동 진영이고, 다른 하나는 공교육 정상화를 추구하는 ‘진보교육연구소’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운동 진영입니다. 이 두 방향의 흐름이 최근에는 ‘범국민교육연대’로 합류하고 그 정책적 대안을 공부하는 ‘교육정책연구회(준)’가 활동을 시작해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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