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볼 아빠’

마산무학여고 핸드볼팀 김성현(37) 코치는 아직도 전국체전 얘기만 나오면 입가에 웃음이 떠날 새가 없다.

엔트리 7명을 채우지 못해 체전 참가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선수들이 똘똘 뭉쳐 우승보다 값진 ‘1승’을 거둬줬고, 팀이 승리했을 때 선수들이‘선생님 말대로 하니까 정말 이길 수 있네요’라며 든든한 믿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2일 무학여고 체육관에서 만난 그는 항상 그랬듯이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었다.
그의 핸드볼 인생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천 구월중학교 재학시절 운동부를 뽑는다는 소릴 듣고 무작정 신청을 했단다.

한 달여 동안 하루 운동장 100바퀴를 도는 강행군을 거치고 그의 손에 들린 건 핸드볼 공. 그제야 핸드볼 선수를 모집한다는 걸 알았단다.

그때부터 오른쪽 사이드, 포스트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대학까지 선수생활을 했지만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다.

현역으로 군 생활까지 마친 94년. 인천 구월초등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지도자로 나서볼 의향이 있냐고….
우연하게 팀을 맡아 3개월만에 출전한 대회에서 전국 4강에 들어버렸다. 그때 ‘지도자로 뭔가 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이후 김 코치 나름대로 선수를 지도하는 방법을 터득해 97년도에는 모든 대회를 석권하며 왕좌에 오르기도 했다.
지도자 생활 10년째 접어드는 올 해 그에게 새로운 제의가 들어왔다.

“무학여고 핸드볼팀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들어왔을 때 솔직히 망설였죠. 연고도 없는 곳에서 제가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그는 무학여고의 핸드볼 팀을 맡았다. “잘 나가는 선수들을 우승시키는 것보다 열악한 환경에 있는 팀을 맡아 1승을 거두는 게 더 보람 있잖아요”라며 코치직 수락 배경을 밝혔다.

아직 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진 못했지만 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전패를 거듭했던 팀이 달라졌다. 7월 대회에선 시즌 전관왕을 구가하던 대구제일고를 꺾는 이변을 연출했고, 전국체전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신반의했지만 승리를 일궈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내 지도가 필요하다면…달려간다’

핸드볼 사랑이 가족사랑을 능가하는 게 아닌가 싶어 가족 얘기를 살짝 들춰봤다.
“사실 마산에 내려온 지 9개월째인데 인천에 올라간 것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며 “이러다 쫓겨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멋쩍게 웃었다.

김 코치에게는 청주시청에서 핸드볼 선수로 활약했던 아내 최혜경(33)씨와 딸 세인(6)이가 있다. 그러면서 휴대전화를 살며시 꺼내든다.

‘아빠 사랑해요’, ‘아빠 힘내세요’ 여섯 살배기 딸이 보내 준 문자를 지우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다. “힘들 때요? 혼자 이 문자보고 웃고 그래요”라며 씨익 웃었다.

외동아들인 그에게 인천으로 복귀하라는 집안의 강요도 현재로선 만만치 않다.
김 코치는 “얼마 전에 집에 갔더니 아버지께서 인천으로 오지 않으면 원룸 보증금을 뺀다고 협박도 당했다”면서 좀 더 싼 곳으로 옮겨야겠다고 하소연했다.

현재 국가대표 상비군 코치로 ‘태극마크’를 달고 있지만 그는 국가대표 코치도 해보고 싶다는 야망도 숨기지 않았다. 물론 기회가 되면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말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그의 핸드볼 사랑만큼은 국가대표급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한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선수는 80여명인데 20여명밖에 대학 진학을 못해요. 그러니 핸드볼을 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입장이죠”라며 현실적인 어려움도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 선수들에게 열심히 하면 진학해서 선수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핸드볼이 지금보다 더 인기를 얻고 실업팀이 많아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쑥스러운 부탁을 하나 건넸다.

“이왕 신문에 나오는 거 잘 좀 실어주세요. 사진도 예쁘고 나오게 해주고요. 혹시 인천에서 신문보고 마누라하고 딸이 내려올 줄 알아요?”라며 특유의 함박웃음을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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