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의 진산 여항산(744m). 백두대간이 남해안에 질러놓은 마지막 정기라고 한다.

대간은 과연 한반도의 등줄기를 이루며 내려와 함안군을 빙 둘러 광려(720m)생동(720m)봉화(649m)서북산(739m)을 빚었고 여항산 너머 서쪽에 방어산(530m)을 밀어올렸다.

함안은 남고북저(南高北低) 지형이다. 보통의 남저북고와 달라 풍수지리에서는 반역의 기운이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여항산(艅航山-‘여’와 ‘항’은 둘 다 배를 뜻한다)이란 이름은 조선 선조 때(1583년) 함주도호부 부사로 왔던 한강 정구 선생이 반역의 기운을 잠재우기 위해 배가 다니는 낮은 곳이라는 뜻으로 붙였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은 어떤가. 사람들은 고루한 봉건적인 생각을 버리고 오른쪽에 바라보이는 남해를 향해 곧장 나아갈 듯한 기세를 뽐내는 정박 중인 함선으로 재해석해 냈다. 함안을 등에 업고 잘 차려 입은 늠름한 대장부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여항산은 또 역사의 고비마다 겪어야 했던 땅붙이들의 아픔을 함께 겪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 미군과 인민군의 격전지였던 곳이다. 동서로 가로질러 칼 같은 모양으로 남북을 갈라놓고 있으니, 마산부산까지 점령하려는 인민군과 낙동강을 지키려는 미군이 7월부터 9월까지 19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전투를 치렀다고 전사(戰史)는 적고 있다.

개발 바람이 한창이던 90년대 초반에는 여항산 자락을 포함한 여항면 주서리 일대 110만평을 레저 공간으로 조성한다는 행정관청의 계획 때문에 말썽을 빚기도 했다.

92년 용역을 거쳐 경남랜드 조성계획을 확정한 경남도는 93년 개발에 들어갔으나 주민들 대다수의 반대에 부딪혔다.생활터전과 자연생태계가 망가진다는 게 이유였다. 군민의 식수원을 이루는 함안천이 발원하는 이곳에다 어찌 유원지를 만들겠냐는 주장도 힘을 보탰다.

여항산보존회와 경남랜드건설반대대책위원회가 잇따라 만들어졌고 경남도는 결국 95년 10월 조성계획을 되물려 여항산은 조금만 상처 입은 채 그대로 지켜질 수 있었다.

여항산은 환경부가 지정한 자연생태계 모니터링 대상지역이다. 관련 학계에서는 지리산보다도 보존상태가 좋은 곳으로 여항산을 꼽고 있다. 94년 경남대 생물학과 함규황 교수는 ‘거의 원시림 상태로 보존돼 있다’고 보고했다.

남해안 섬 지역에 주로 자라는 소사나무 군락지는 전국에서 이곳뿐이라고 알려져 있고 자생 두릅 군락지도 품고 있으며, 새와 곤충도 아주 많이 깃들이고 있다. 천연기념물인 팔색조를 비롯해, 참매붉은배새매새매매수리부엉이소쩍새 등. 거제 학동 일대에만 산다던 팔색조가 내륙에서는 여항산에서 처음으로 발견돼 안팎의 눈길을 끌기도 했었다.

여항산은 등산길이 아주 가파른 악산(惡山)이다. 봄철 행락객이 들끓는 때인데도 산에 오르는 1시간 30분 동안 만난 것은 딱 두 사람뿐. 악산이기 때문에 생태계가 이만큼이라도 유지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기어코 정상을 ‘정복’해야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아이들 손을 잡고 천천히 산책하듯 오르면 사정은 달라진다. 길은 양쪽으로 늘어선 솔숲 덕분에 알맞게 그늘이 져 있다. 마치 삼림욕장에 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송골송골 땀이 맺히는가 하면 자락을 타고 오가는 바람이 시원함을 안겨준다. 오르는 틈틈이 몸을 돌려 건너다보면 맞은편 필봉을 비롯한 올망졸망 봉우리들이 굽이마다 자태를 달리한다.

꼭대기에 가까워질수록 키작은 활엽수들이 많아져 연둣빛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어린잎들이 철쭉진달래들이랑 함께 마중한다. 꼭대기는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사람들은 각데미라 하는데 여항산의 별칭인 각데미산이 여기서 비롯된다. 한편에선 한국전 당시 미군들이 전투에 지쳐 “갓뎀” 하고 욕을 퍼부었다는 데서 나왔다는 설도 있으나 믿을 것은 못된다. 왜냐면, “각데미 마당바구 비온둥 만둥/조그만 신랑품에 잠잔둥 만둥”이라고, 나이어린 고추신랑에게 시집간 여인네가 밤자리의 허전함을 달래는 노래가 민요로 전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목마름을 참고 길을 되밟아 내려오면 주차장 들머리에 할머니 몇 분이 단술과 동동주를 팔고 있는 게 눈에 띈다. 참 이상도 하다! 올라갈 때는 왜 안 보였을까 잔술은 1000원씩이고 술동이로는 3000원 하는데 5잔이 나온다. 2000원짜리 도토리묵을 더해도 1만원 안팎이니 갈증 달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여항산 가는 길 그리고 맛보기

마산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에는 함안군 가야읍까지 가는 직행버스가 20분마다 있다. 가야읍에서 다시 여항면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좌촌 마을에서 내리면 된다.

30분마다 있는 완행버스를 타도 된다. 이 때는 여항면사무소 앞에서 내려 좌촌마을까지 걸어가면 되는데, 주서리쪽으로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몇 년 전까지는 등산길이 있었으나 누군가가 과수원을 만든다면서 길을 틀어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신마산 댓거리쪽에서 떠난다면 진동으로 가는 편이 낫겠다. 진동에서 가야읍까지 사이를 오가는 시외버스가 30분마다 있기 때문이다. 색다른 맛을 느끼려면 창원역이나 마산역에서 기차로 떠나는 것도 좋은데, 차편이 자주 있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

자동차를 몰고가려면 그냥 남해고속도로를 통해 가다 함안IC로 빠져도 되고 마산 내서 중리를 거쳐 돌아가는 지방도로에 차를 올려도 된다.

다음은 밥집. 여항산에 갔다가 무진정 연당과 대산리 돌부처를 둘러보기 전에 가도 좋고, 함안읍내에 있는 대구식당을 거쳐 무진정으로 되짚어 가도 좋다. 대구식당은 쇠고기국밥을 3500원에 파는데 아주 푸짐하고 그리 짜지 않은 게 먹어둘 만하다.

이밖에 돼지고기 수육과 돼지 불고기도 손님들에게 내놓고 있다. 수육은 네 사람이 먹어도 좋을 만큼 푸짐하고, 불고기는 석쇠로 숯불에 굽기 때문에 맛이 독특하다. 값도 6000원으로 헐하다. (055)583-4026

△가볼만한 곳

여항산에서 내려와 마산 진동 반대편인 함안면으로 방향을 잡으면 얼마 안가 길가에 무진정이 나오는데 함안 조씨들의 종실인 괴산재는 무진정 바로 옆에 있고 도로쪽에는 충노대갑지비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있다. 충성스런 노비 대갑이가 양반을 위해 무언가를 희생해야만 했던 모양이다.

무진정(無盡亭)은 함안 조씨들이 조선 중종 때 벼슬을 지낸 조삼(趙參)의 호를 따 1507년 지었다가 1927년 새로 고친 것으로 연못 건너편 바위에 걸터앉아 있다.

이수정(二水亭)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해마다 사월초파일이면 낙화축제를 벌이는 곳이다. 정자 앞에 있는 인공 연못은 반달 모양 연당(蓮塘)으로, 네모 반듯한 칠원면의 무기연당(1728년)보다도 조성연대가 앞선다. 그런데, 바라보라고 만든 연못 안 인공섬에다 후세 사람들은 조잡한 인공 석재로 구름다리를 놓았다. 게다가 섬 복판에다 울긋불긋 시멘트 정자까지 덧세웠으니 시원하게 부는 바람의 상쾌함은 크게 꺾이고 말았다.

더욱이 잇닿은 도로를 넓힌다는 핑계로 연당 위쪽에다가 고가도로를 올릴 계획으로 설계를 하는 중이라니, 참으로 문화 유산을 보는 안목이 처진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국에 몇 남지 않은 연당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더욱 절실한 때다.

여기서 다시 오른쪽으로 표지판 따라 1km쯤 가면 대산리 석불이 자리잡고 있다. 서 있는 보살이 셋, 앉은 채인 부처가 따로 하나 있다. 앉은 부처와 따로 떨어져 있는 보살은 목이 떨어져 나갔다. 원래 따로따로 흩어져 있던 것들을 마을 정자 밑에 모아 놓은 탓으로 제각각이라는 느낌을 준다.

목이 떨어진 보살과 왼쪽 보살은 약병을 들고 있는 것에 비춰 약사여래로 짐작된다.

앉아 있는 부처의 두 손은 아미타 상품인을 하고 있는데, 상품인 불상은 우리나라에서 아주 드물어 중요한 사례라고 한다. 보물 제 71호로 지정돼 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이같은 사실들이 안내판과 군지에도 제대로 기록돼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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