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무려 5년 가까이 고용승계 투쟁을 벌이는 노동자들이 있다.



삼미특수강노조 고용특별위원회(위원장 김현준·39) 소속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지난 97년 2월 포항제철이 자회사인 창원특수강을 만들어 삼미특수강 공장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어버렸다.



당시 포철은 삼미특수강 봉강·강관 공장 노동자 2342명 가운데 1770명만 받아들인 채 나머지 562명은 채용하지 않았고, 고용승계를 바라는 245명은 계속해서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 중 182명은 97년 12월 중앙노동위원회 결정을 거쳐 99년 1월 서울고법에서 “부당해고이므로 원직복직시켜라”는 판결을 받았으며 63명도 창원지법에 소송을 내놓은 상태다.



하지만 포철은 “고용한 적이 없으므로 복직시킬 것도 없다”는 입장인 채 “대법원 판결이 나면 따르겠다”며 상고를 해놓고 있다.



포철이 이렇게 주장하는 데는 나름대로 까닭이 있다.



포철과 창원특수강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애초 공장자산만 인수하기로 했고 △부채는 인수하지 않은데다 △고용승계를 않기로 명시했으며 △245명은 대부분 삼미특수강 직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고용특위는 △대부분 삼미특수강 인원을 재고용했고 △같은 제품을 생산할 뿐 아니라 △거래선도 유지하고 있는데다 △소프트웨어와 기술 등도 인수한 관계여서 사실상 영업 양수이므로 재산뿐 아니라 사람까지 승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노위와 법원의 판단은 ‘자산 인수가 아닌 영업 양수로 고용승계 해야 한다’는 것으로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으며, 창원세무서와 감사원도 포철의 삼미특수강 인수를 영업 양수로 보고 그에 따르는 세금을 매겼다.



고용특위 노동자들은 현재 삼미특수강에서 휴업수당(정부 고용유지지원금 포함) 성격으로 월 평균 70만원을 받으면서 생계와 투쟁을 병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갖가지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오랫동안 이어지는 노숙과 전국순회 등으로 건강이 망가진 게 첫째다. 지난해 11월 검진 결과에 따르면 115명 가운데 정상은 24명 19%뿐이고 나머지 91명은 위장·간장·근골격계·호흡기계·비뇨기계·순환기 등에 질환을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에는 이광수씨가 해고에 따른 가정파탄으로 자살했으며 올 6월에는 양영대(41)씨가 뇌경색에 걸려 산재요양신청을 냈다.



또 9월에 조기동(43)씨가 심근경색증 판정을 받았으며 50대 노동자 가운데는 2명이 중풍을 맞아 쓰러지기도 했다.



또 생계문제로 압박을 받다보니 가장의 자부심과 권위는 사라진 지 오래고 부모형제와 친지·동료들에게 사람 노릇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며 ‘실업’상태 때문에 대인관계조차 문제가 생기는 지경이다.



하지만 삼미 노동자들의 이같은 고통에는 아랑곳없이 포철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자는 입장이고, 대법원은 고법 판결 이후 2년이 되도록 까닭없이 공판 기일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에 앞서, 뜻하지 않게 구조조정 1호가 돼 버린 삼미특수강의 해고노동자들의 고통은 그만큼 더 연장되고 있다.






<인터넷서 불붙은 고용승계 논쟁 활발 designtimesp=19974>



고용승계를 둘러싼 포철과 삼미노동자 사이의 대립이 유례없이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 논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3일 포항제철이 인터넷에서 포철에 항의하는 홈페이지인 안티포스코 사이트 운영자를 상대로 서울지법에 ‘사용금지가처분신청’을 내어 17일 승소 결정을 받았다.



롯데·이랜드 등 안티 홈페이지가 속속 생겨나고 있고 풍자를 전문으로 하는 인터넷 신문 딴지일보가 인기를 끄는 와중에 나온 첫번째 결정이어서 당시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포철은 포철 건물을 배경으로 포철 로고에 가위표를 한 도안이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홈페이지 운영자들은 법원의 결정을 받아들여 홈페이지 도안을 ‘찢겨지고 짓밟힌 모양’으로 바꾸는 한편 ‘법원의 결정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라며 6월 8일 이의 신청을 냈다.



이후 법원은 10월 27일 공판에서 사안의 성격상 (가볍게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포철에 권해 본안 소송(상표사용금지 또는 손해배상)을 내도록 하고 내년에 이 문제를 함께 다루기로 했다.



운영자들은 안티포스코 홈페이지가 채택하고 있는 ‘패러디’는 사회적 약자가 거대권력에게 반대의견을 표현하는 기법으로 일반화돼 있으며 이런 정도조차 못 쓰게 한다면 표현의 자유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진보적인 통신단체들의 모임인 ‘진보네트워크센터’와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는 “안티포스코 홈페이지는 복직을 인정하지 않는 데 항의하는 사회적 약자의 표현수단”일 뿐이라며 포철에 검은 리본 달기 등 항의행동을 계속 벌이고 있다.



또 이같은 사용금지가처분에 따른 법정 공방은 곧바로 인터넷을 통해 알려져 전세계 진보통신단체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 결과 국제진보통신연합(APC) 주도로 사용금지된 도안을 그대로 복제해 만든 안티포스코 사이트가 여러나라에 선보이게 됐다.



4월 20일부터 지금까지 일본과 미국·영국·캐나다·독일·스페인을 비롯해 우크라이나와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모두 8개 나라의 11개 통신단체가 만든 11개 사이트가 사용금지된 도안을 단 채 운영되고 있어 사용금지 신청이 되레 사용을 ‘부추긴’ 꼴이 됐다.



<고용승계 관련 일지 designtimesp=20023>



△1996년 12월 16일 삼미특수강 강봉·강관 공장 분할 매각 발표



△1997년 2월 14일 포항제철, 삼미특수강 공장 인수 위해 자회사 창원특수강 설립



△2월 17일 포항제철, 자산매매 형식으로 삼미특수강 인수 계약



△3월 24일~9월 12일 3차례 상경투쟁



△4월 1일 2342명 가운데 562명 해고



△5월 6일 창원세무서 세금 징수 관련 사업 양수·양도로 본다고 밝힘



△7월 4일 국회에 청원서 제출



△10월 16일~11월 4일 44명 집단 장기기증과 단식 농성



△12월 17일 구제신청 낸 182명에 대해 중노위 ‘부당해고 원직복직’ 결정



△1998년 4월 22일 대통령 민주노총 지도부와 면담에서 “중노위 결정 존중 조캇



△5월 21일~ 9월 24일 서울역 노숙투쟁



△5월 8일 감사원 “자산 인수 아닌 사업 양수” 밝힘



△7월 10일 노사정위원장, 포철 앞으로 “고용보장 촉구” 권고



△7월 23일 민주·한국노총 위원장-노사정위원장 “1차 계열사 복직, 재판 이후 원직복직” 합의



△1999년 1월 22일 서울고등법원 전원 원직복직 승소



△4~5월 경상남도·창원시·마산시 의회 복직 건의서 대법원에 제출, 마산·창원·진해 시민 20여만명 서명 탄원서 대법원에 접수



△6월 5일 이광수씨 부당해고에 따른 가정파탄으로 목매 자살



△7월 1일 국회의원 37명 대법원에 ‘ 조속한 재판 촉구 건의서’ 제출



△9월 1일 2년여 걸친 22차례 교섭 최종 결렬



△9월 11일 고용승계 투쟁 1000일 기념집회



△10월 5일~2000년 1월 1일 상경노숙투쟁



△2000년- 1월 4일~3월 6일 창원특수강 정문 앞에서 고용승계 완전쟁취 집회



△3월 7일~18일 23개 주요 도시 상대로 전국대장정, 서울 진격투쟁



△3월 16일 국제자유노련(ICFTU), 대통령에게 전원 복직 요청 서한



△3월 31일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 포철에 고용승계 촉구 결의



△4월 12일 세계 IMF철강회의, 대통령에게 보내는 복직촉구 항의서한 채택



△5월 김수환 추기경 대법원장에 탄원서 제출



△5월 20일 경남지역 성직자 170명 대법원에 탄원서 제출



△5월 22~23일 OECD 철강위원회에서 삼미특수강 노동자 문제 거론



△5월 25일 보스턴 US 신탁회사(포철 주주) 유상부회장에게 항의서한 발송



△6월 8일 안티포스코 홈페이지 도안사용금지 가처분 결정 대한 이의신청



△6월 8일 부당해고 때문에 뇌경색에 걸렸다며 양영대(41)씨 산재요양신청



△9월 조기동(43)씨 심근경색증 진단



△10월 10~20일 고용승계 촉구 자전거 전국대장정 시작



△10월 21일~12월 9일 국정감사를 맞아 대국회·대정부 투쟁



△11월 28일 국회의원 57명 재차 대법원에 탄원서 제출



△12월 28일 노동부 본부 중재로 포철(창원특수강)과 교섭 예정



<삼미특수강노조 고용특위 김현준 위원장 인터뷰 designtimesp=20176>



삼미특수강노조 고용특위 김현준 위원장은 “‘정든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는 인간적 바람이 기본이지만 이미 해고의 자유를 둘러싼 자본과 노동의 대리전이 된 이상 꼭 이기고 말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대리전 성격은 지난달 1일 포철 유상부 회장이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 발언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따지는 안영근 의원의 질문에 유 회장은 복직투쟁 중인 노동자 대부분이 노조 간부·대의원 등을 지냈기 때문이라는 점을 에둘러 인정하면서도 핵심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어서 유회장은 “삼미특수강의 경우 자산인수가 아니라면 앞으로 기업 합병은 100% 있을 수 없고 이렇게 되면 구조조정이 안된다. 노동자의 권리나 법의 존엄성도 잘 알지만 국가경제에 가장 큰 문제가 돼 있는 구조조정마저 못하게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사명이 있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구조조정 등 기업 활동의 자유를 가로막는 부당해고 판정을 스스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반면 법원은 노동자들의 주장을 끌어서 정당성을 인정하고 포철의 패소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 제9특별부(재판장 조중한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채용안된 삼미 직원들은 정리해고될 운명인데 만일 고용승계가 안된다면 사업을 폐지하면서 자산양도 형식을 띠기만 하면 ‘사업폐지의 경우 노조와 합의한다’는 단체협약권과 회사재산으로 담보되는 임금채권 우선변제권이 다치게 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구조조정을 위한 해고의 자유냐, 생존권을 위한 고용승계냐’를 두고 포철과 삼미 노동자들이 전체 자본과 노동을 대표해서 다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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