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마냥 좋아 내 인생 올인했죠

궁금했다. 40줄에 접어든 나이에 축구를 시작했다는 게. 또 불과 일년만에 팀을 전국 최강으로 만든 노하우를.

배 감독은 ‘그저 축구가 좋아 시작한 일이고 열심히 하다보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지극히 평범한 답변을 내놓았다.

지난 2001년 4월 여자축구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경남에 초등학교로서는 처음 팀을 창단한 창원 명서초. 창단에서 현재 전국최강의 자리에 있기까지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배성길(44) 감독을 만났다.

배 감독이 처음 축구를 시작한 게 나이 마흔이 다 되어갈 때였다. 축구부가 있는 학교출신도 아닌데 말 그대로 그저 축구가 좋아 독학으로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땄고, 방과후 특기적성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축구를 가르친 게 인연이 돼 팀을 창단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창단 과정은 쉽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여자축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보니, 일년동안 교장선생님을 쫓아다니며 설득작업을 했죠. 여자축구의 발전 가능성과 경남에 꼭 팀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나름대로 내세워 설득하다보니 교장선생님도 결국 ‘OK’사인을 내주더라고요.”

나이 마흔에 입문한 ‘늦깎이 축구 인생’

우여곡절 끝에 팀은 창단됐지만 선수수급이라는 문제가 발등에 떨어졌다. 당장 뛸 선수가 없어 호기심에 축구화를 신은 학생들을 상대로 열심히 가르쳤다.

배 감독은 “축구선수라는 개념자체가 아예 없었죠. 드리블 연습을 시키고 뒤돌아서면 애들은 흙장난이나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며 “저녁에 훈련을 하려고 하면 말도 없이 집으로 간 학생도 있어 찾으러 가는 일도 예사였다”고 말했다.

4월에 창단된 팀이 5월에 전국소년체전에도 나갔다. 첫경기 결과는 0-3의 완패. 하지만 여기서 배 감독은 희망을 발견했다고 했다.

배 감독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상태에서 세 골만 줬으니 잘 한 거죠. 그때부터 이 놈들을 데리고 뭔가 일을 한번 저지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옆에서 인터뷰를 지켜보던 선수들을 치켜세웠다.

그로부터 불과 일년 후 창원명서초는 소년체전에서 은메달을 땄고, 전국대회 2연패를 달성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항상 여름이나 겨울이면 어느 학교를 찾아 한 수 배울까 하는 생각을 이제는 하지 않아도 된다.

배 감독은 “2연패를 달성하고 나니 주변에서 보는 시선이 달라졌죠. 솔직히 그전에는 축구선수 출신이 아니어서 성적을 내지 못하면 ‘별 수 없지’라는 생각을 할까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며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팀에서 전지훈련을 오겠노라고 연락이 오면서 뭔가 이룬 거 같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고 고백했다.

때론 ‘오빠’ 때론 ‘아빠’로 선수들 지도

지금도 배 감독은 대한여자축구연맹의 이사로 여자초등학교 축구지도자 모임의 회장을 맡는 등 여자축구계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있다.

‘필승의 집’으로 명명된 축구부 숙소. 감독님 방은 선수들에겐 그야말로 열려있는 공간이다. 감독과 선수가 함께 어울려 텔레비전도 보고 통닭도 시켜먹는다. 다른 운동부 감독실은 실제 닫혀있는 경우가 많아 이유를 물었다.

배성길 감독은 “운동하는 것만도 힘들텐데, 생활은 좀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서 편하게 대해준다”며 “운동장에선 감독이지만 숙소에서는 ‘오빠’로, 때로는 ‘아빠’역할까지 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때문인지 학교에서 배운 성교육에 대해 물어 올 때도 있어 다소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고….

또 하나 훈련을 마친 후 자유시간에도 선수들은 학습지를 보며 공부를 한다. 운동과 공부를 적절히 섞어가며 가르쳐 선수가 아닌 체육영재로 키우고자 하는 감독의 욕심 때문이다.

배 감독의 팀 운영 노하우는 바로 집중력이었다. 실제 2시간 동안 가르칠 내용을 30분 안에 설명을 해놓고 나머지는 선수들에게 맡긴다.

여자축구 발전 생각에 힘든 줄도 몰라

드리블에서 슈팅에 이르기까지 설명을 들은 선수들이 직접 해보고 안 되는 부분만 감독이 따로 지시를 내린다. 초등학교 선수들은 세세한 전술보다는 기본기에 충실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배 감독이다.

직접 가르친 선수들이 여자축구 국가대표가 돼 태극마크를 다는 모습을 보는 게 소원이라는 배 감독은 경남 여자축구의 연계육성을 위해 대학과 실업팀까지 창단됐으면 하는 욕심도 있었다.

배 감독은 “현재 도내에는 초·중·고로 이어지는 연계는 잘 되고 있지만 대학과 실업팀이 없다보니 학부모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축구를 시키는 걸 꺼린다”면서 “경남이 여자축구의 메카가 되어 한국여자축구의 구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짧은 시간의 인터뷰로 그 사람의 모든 걸 알 수는 없겠지만, 배성길 감독을 만나면서 하나는 확실히 느꼈다.

‘한국여자축구 발전을 위해 지역에도 묵묵히 땀흘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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