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모처럼 국회가 정상화되어 그동안 밀렸던 새해 예산안을 비롯한 각종 민생, 개혁법안 심의에 본격 착수하기 시작하였다. 파행 1주일만에 다시 문을 연 국회는 정기국회 폐회 예정일인 12월 9일까지 며칠 되지 않는 활동기간 동안에 예산안뿐만 아니라 추가 공적자금 처리 및 공적 자금 국정조사, 한빛은행 국정조사 및 계류중인 의안 326건의 처리 등 산적한 현안들을 다루어야만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뒤늦게라도 국회가 다시 가동된 것에 대해서는 일단 반가움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지만 저간 사정으로 보아 걱정이 앞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무엇보다 시간상의 제약이라는 물리적 한계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이번 기회에라도 다시금 확인하고자 한다. 국회가 다시 열린 것에 대해서 국민들의 관심이 지극히 냉냉하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이겠는가· 한마디로 경제위기설로 잔뜩 얼어붙은 경기에 구조조정, 사정한파가 밀어닥쳐 생계에 대한 불안으로 떨고 있는 국민들의 마음에 이번 국회가 어떤 한가닥 희망이라도 줄 수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국회가 재개되던, 공전하던 국민의 관심 밖의 일이 되버린 현실을 정치인들이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이유는 명백하다. 국회가 본연의 임무를 멀리하고 당리당략에 따른 정치 공방에 매달려 회기의 절반을 까먹은 책임은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 전반에 있다고 할 것이다. 각설하고 대의기구인 국회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상황을 근본에서부터 반성하지 않고는 목전에 놓인 의안처리가 올바르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각별히 강조하는 바이다.

물론 산더미같이 쌓인 현안처리에도 빠듯한 일정을 내세워 상황논리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국민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밖에 없는 40조원이나 되는 추가 공적 자금 처리나 실업자를 양산하게 되고, 생존권을 위협하는 공기업 민영화, 남북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국가보안법 개정 등 쟁점 사안들은 어느 하나도 허투루 처리할 수 있는 안건들일 수 없다. 그렇다면 이들 사안들을 처리하는 데 있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정쟁으로 몰고 가거나 졸속 처리로 또다시 국민에게 실망을 안기고 민생에 폐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근본 각오를 다지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 아니겠는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는커녕 부담을 주는 정치의 오명을 쓴지 오래다.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에게 책임을 질 줄 아는 국회운영을 남은 회기 동안이나마 보여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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