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하키 이끌어갈 19세 신데렐라

아테네 올림픽이 있기 전 태릉선수촌에서 박미현(인제대 1) 선수를 만난 적이 있었다.

좀 미안한 얘기지만 까치머리를 한 박 선수의 첫 인상은 선머슴(?)이 연상됐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운동할 때 거슬릴까 봐 고등학교 이후로 이 머리모양을 한 번도 바꿔본 적이 없었다고….

당시 박 선수의 어린 나이 때문에 ‘혹시 후보가 아니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지만 올림픽 하키 경기를 보면서 그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었음을 깨닫게 됐다.

박미현 선수는 19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저돌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꿈의 무대인 올림픽에서 무려 3골을 넣어 일약 여자하키 대표팀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올림픽이 끝난 후 조심스레 박 선수의 전화번호를 눌렀고, ‘올림픽이 끝나면 인터뷰 한 번 하자’는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겠냐는 엄포(?)로 인터뷰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김해 하키장에서 만난 박 선수에게 먼저 다가온 건 김해여중 하키부원들. 올림픽에서 활약하는 걸 본 탓인지 “언니 정말 수고했어요”, “손 한번만 잡아봐요”라는 주문이 쏟아졌다.

“어 그런라며 동생들의 환대에 보답하는 박 선수의 얼굴은 홍당무만큼이나 붉어져 있었다.

메달 못 딴 것보다 텅빈 관중석이 더 마음 아파

박미현 선수는 “하키를 시작한 이후로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건 처음”이라며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19살에 출전한 올림픽은 어땠을까 물었더니 ‘서러웠다’는 반응이 되돌아왔다. 박 선수는 “올림픽기간 내내 하키장을 찾은 관중은 열 명도 안 됐다”며 “심판도 유럽사람을 많아 가뜩이나 플레이하기 힘든 상황인데, 텅 빈 관중석을 보면서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톡톡히 경험했다”고 전했다.

또 북경 올림픽에서는 반드시 금메달을 따 푸대접받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아테네 체류기간 동안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라면 전쟁’도 벌어졌단다. “출출할 때 라면 먹는 게 얼마나 맛있는지 아는 사람만 안다”며 혹시 군대갔다 왔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럼 그 라면 맛을 알겠다”며 “라면이 한 번 공수(?)되는 날이면 라면을 하나라도 더 구하기 위해 전쟁이 벌어졌다”고 털어놨다. 라면 하나로 공감대가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박미현 선수는 뭘 좋아할까? 역도의 장미란 선수가 연습기간에도 탤런트 권상우가 나오는 드라마는 빼놓지 않고 봤다는 보도 때문에 권상우와 직접 데이트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지만 박 선수는 드라마 <풀 하우스 designtimesp=22427>를 몰라 친구들한테 왕따(?)를 당하기도 했을 만큼 연예인이나 드라마에는 관심이 도통 없었다.

박 선수는“제가 드라마는 잘 안보거든요. <풀 하우스 designtimesp=22429> 얘기가 나왔는데 나만 몰라 소외된 적도 있었다”면서 “그 대신 아테네에서도 <트로이 designtimesp=22430>, <제3의 시나리오 designtimesp=22431> 같은 책은 많이 읽었다”고 말했다. 또 판타지 소설을 즐겨 읽는데 이유는 주인공이 된 상상을 하면 불끈 힘이 솟아서라고….

대표팀 소집에 바빠 학생증 없는 ‘무늬만 대학생’

인터뷰를 하면서 ‘국가대표’이전에 ‘대학 새내기’라는 사실이 문뜩 떠올라 대학생활에 대해 물어봤다.

대표팀 소집 등으로 바빠 아직 학생증도 없는 무늬만 대학생이라고 고백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입학과 함께 대표팀에 소집돼 감독 선생님을 뵈러 온 게 전부 다 보니 동기들도 박 선수를 보면 ‘꼭 손님이 온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가 정말 하기 싫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도 한 번 받아보고 싶어요”라며 씨익 웃었다.

고향이 서울인 박 선수는 주니어 대표시절 알게 된 인제대 허상영 감독에게 한 수 배우고 싶어 아무런 연고도 없는 김해를 택했다. “감독님께 물론 기술도 많이 배우지만 그보다는 자만에 빠지지 않고 운동할 수 있는 됨됨이를 배우고 있다”며 뭐니뭐니해도 사람이 큰 재산이라고 조언도 해주었다.

박 선수의 꿈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심판. 유럽세가 판을 치고 있는 하키무대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떨치는 싶는 19살 소녀의 바람이었다.

햇볕에 그을릴까봐 준비한 썬 크림을 선물하면서 박 선수와 또 한번 약속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선 반드시 금메달리스트로 인터뷰하기로.

인터뷰 시간 내내 환하게 웃는 박 선수를 보면서 한국 여자하키의 미래도 그녀의 웃음만큼이나 밝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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