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9일부터 시작된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투쟁이 이제는 시민적인 분노로 바뀌어 가는 듯이 보인다.

정리해고 반대에 많은 시민들이 정서적으로 공감하기에 생기는 현상일 수도 있지만, 대우자동차 사용자에 대해 공권력이 지나치게 편들기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이제는 권력의 정당성에 강한 의문을 던지는 시민들의 분노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집권여당은 민심을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지난 10일 발생한 경찰폭력에 대해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시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10일 대우자동차 정문 앞에서 발생한 경찰폭력에 대해 일군의 시민들은 ‘지금이 독재정권시대인가’ ‘경찰이 계엄군인가’ ‘80년 광주의 비극을 다시 보는 것 같다’라고 반응하고 있다.

이 시민적 분노는 시간이 지나면 수그러드는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지만, 공권력 남용이 과거완료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터진 이 시민들의 분노는 일시적인 감정표출이 아닌 뭔지 알 수 없는 미래의 희망에 대한 좌절이 배어 있다.

지금 이들은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들이 어제의 모습이 아니라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사회 민주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자괴감과 한숨을 분노로 돌려세우고 있다.

다른 부류의 시민들은 사회적 사건에 대해 냉담과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들의 무반응이 권력에 대한 인정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세상살이의 피곤함으로 인해 가슴이 마치 숯덩이처럼 새까맣게 변해버린 가운데 말문마저 닫고 사는 게 상책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세상일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유일한 출구라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자기 자식의 교육문제와 가족의 장래문제에는 적극적이고 심지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교육이민을 고려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사회는 더 이상 애정과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 저주와 원망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같은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 세상을 바꾸자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의 적극적 생활방식보다 세상을 등지는 도망자나 은둔자 같은 소극적 생활방식이 더 높이 평가된다면 우리는 이제 사회에 대해 생각을 다시 해야 한다.

지난 10일에 발생한 경찰폭력에 대해 책임을 정확히 밝혀 다시는 이런 야만적인 폭력이 생기지 않게 한다면 우리는 불행한 과거로부터 일정한 단절을 꾀할 수 있다. 한 사건과의 단절은 이렇게 쉽게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인간의 신체와 정신에 대한 직접적 폭력이 아닌 간접적 폭력에 대한 차단은 권력자의 의지로서만 해결될 수는 없다.

권력을 행사하는 당사자의 의지가 아무리 선하고 정당하다 하더라도 제도적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면 탈법과 불법은 합리화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탈법과 불법이 판을 치면 사회는 모두가 더 이상 같이 모여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이용과 편의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사회를 바라보는 개인들에게 타인을 배려하면서 더불어 사는 것은 껍데기뿐인 교과서의 규칙으로 전락하고 나만의 이익이 전부라는 반사회적인 규칙만 남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적 절차는 사회를 지키는 원칙이다. 바로 이 절차적 과정이 무시된 공권력 행사는 부당한 권력사용의 전형이다.

대우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노조출입을 막기 위한 경찰의 대응이 처음부터 불법적인 행동일 수밖에 없는 것도 노조원의 사무실출입을 허용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였기 때문이다.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면서 불러들인 경찰의 폭력대응은 한마디로 탈법의 전형일 뿐이다.

이런 경찰의 불법적 폭력행사라는 문제의 뒤에는 현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놓여 있다는 점이 먼저 밝혀져야 한다.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문제는 처음부터 해외매각에만 눈을 돌린 정부에게 우선적인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정리해고 발표이전에 정부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말하면서 그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과 왜 대화조차 하려고 하지 않았는지 이제는 밝혀야 한다.

정리해고 발표 마지막 순간에 노조가 내놓은 ‘무급순환휴직제’마저 거부한 근거가 무엇인지 말해달라고 하는 것도 과연 공권력에 대한 도전인가. 노동자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에 유감이라는 말은 가진 것 있고 잃을 것 없는 사람의 말장난이 아니고 무엇인가.

답답한 현실에서 도망가기보다 싸우려는 시민들에게 이제는 격려를 보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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