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이 역사왜곡의 높은 파고가 휘몰아 치는 바람에 현해탄이 가로막히려 한다. 그동안 고위층의 간단없이 내뱉는 특유의 망언과 지워지지 않는 역사왜곡으로 국민의 심기를 건드리며 얼마나 불편케 했는가 말이다.

문제는 일본이 한국의 정체성과 역사를 올바르게 인정하지 않는데서 비롯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예를 들자면 일본 역사교과서에는 일본은 3세기에 신라를 정복하고 조선남부를 경영했다고 날조된 황국사관(皇國史觀)을 정사로 가르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고대 한일 관계사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임나일본부설에 대해서도 대부분 교과서가 이를 인정해 서술하고 있다.

임나일본부설은 대화정권이 한반도 동남부에 진출해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했으며 특히 가야에는 일본부라는 기관을 두어 6세기 중엽까지 직접 다스렸다고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내세우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일본 역사교과서가 한국사의 기원인 고조선을 아예 누락시켰는가 하면 조선을 이씨조선으로, 주권침탈을 병합으로 표기하는 등 역사왜곡은 여전히 시정되지 않고 있다.

고교의 일본사 7종, 세계사 7종에 보면 최초국가인 고조선 대신 한군현을 들머리에 등장시켜 한국사의 긴 연대를 끌어내리고 시작부터 중국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꾸며놓기도 했다.

또 국호인 조선을 이씨조선 또는 이조로 표기하고 있다. 특히 근세사에 일군위안부에게 가해진 범죄행위에 대해 단순히 젊은 여성들이 위안부로 전쟁터에 보내졌다고 처리하는 제국주의 사관을 그대로 노출시켜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교과서들은 기원 3세기, 일본의 조선통치로부터 갑자기 13세기로 훌쩍 뛰어넘어 고구려·백제·신라로부터 통일신라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통째로 빼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몽고의 고려지배’와 ‘고려의 몽고에의 복종’을 유난히 내세우는 것을 눈여겨 봐야 한다.

일본사가와 문인들의 조작에 의한 사실(史實)을 바탕으로 고려인의 수난과 몽고지배하의 비굴한 복종을 그린 소설 및 역사물이 일본에서는 베스트 셀러가 되어 왔다.

몽고의 고려침략을 써야 한다면 조국강토를 수호하기 위해 끈질기게 저항한 고려 민중들의 기상과 끈질긴 항쟁을 표현해 내는 것이 역사의 진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양심적인 사학자들이나 작가들에 의해서만이 제한적으로 취급되어 왔을 뿐이다.

지난 1967년 일본 최정상의 르포작가로 알려진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가 마산의 몽고정을 찾았다. 그는 매일신문에서 정년퇴직하자 역사탐방 시리즈를 출판하여 저술가로 일약 유명했을 때였다.

몽고가 고려를 삼키고 일본침략을 감행할 당시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기 위해 현지답사에 열을 올린 일을 기억한다. 일본은 언제나 고려를 몽고의 말발굽아래 짓밟혀 온 약소국이요 형편없는 나라로 곧잘 표현해왔다. 그러니까 마산시 자산동 118번지에 있는 우물을 보라!

몽고정으로 이름을 붙인 것이 바로 일본이다. 이 우물은 고려말 충렬왕 7년(1281) 원나라 세조가 일본원정을 준비하기 위해서 파놓았던 것이다. 일본정벌이 2차에 걸쳐 실패로 돌아간 후, 그 해 10월 연해방비를 위해 환주산(수도산)에 정동행성을 설치했을 때다. 이 근처에 둔진군의 용수로 쓰기 위해 우물을 판 것이 오늘의 몽고정이다.

석비에 몽고정이라 써서 세워 둔 것은 1932년 마산고적보존회(일본인 고적단체)가 멸시적 감정과 비하하려는 속셈으로 명명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거리낌없이 부르고 있으니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이전에는 고려정으로 떳떳이 불렀는데 말이다. 이 하나만 보더라도 일제가 우리를 철저하게 외세에 종속시키려는 의도하에 붙인 이름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역사왜곡에 대한 비난에 앞서 우리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주변에 잔존해 있는 친일청산이 더 급하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맞는 말이다. 우리 지역만 해도 엄연히 고려정·두척산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몽고정·무학산으로 둔갑해 부르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몽고정 이것은 바로 주체의식을 깡그리 짓밟는 명칭이요, 역사 왜곡의 상징임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한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