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는 말은 조선조 실학자 여암 신경준이 주창하고 정립한 우리 땅의 지형적 개념이다. 백두대간은 산경(산줄기)의 개념으로 우리의 땅과 강을 나눈 척량산맥으로 1정간과 13지맥을 거느리고 있다.

낙동강을 사이에 둔 낙남정맥과 낙동정맥은 호남 및 영동지방과 지리·언어·문화·기후를 구별시켜 주는 우리 고장의 대표적 산줄기이다. 태백산에서 갈라져 나온 낙동정맥은 부산 몰운대에 이르러 영남지방을 동쪽으로 감싸안고, 낙남정맥은 지리산 영신봉에서 뻗어 나와 김해 신어산까지 서남쪽으로 울타리를 치고 있다.

태백산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남으로 남으로 달려와 더 넓은 태평양과 만나는 그 곳에서, 불끈 힘을 모아 치솟은 해발 630.4m의 신어산(神魚山). 그 어떤 고산준령에 비하더라도 조금도 뒤지지 않을 당당한 모습으로 옛 신석기 시대를 거쳐 청동기·철기의 찬란한 500년 가야문명을 꽃피우고, 21세기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늘 그 모습 그대로 문명사의 산증인으로 남아 준 그 이름조차 신령한 신어산.

그런 그대가 근시안적 인간의 우둔함으로 시련을 맞이하고 있다. 산허리를 싹둑 잘라 대학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김해시는 최근 전문대 설립부지를 당초 고시하였던 삼계동 일원에서 삼방동 산 77-1 일대 8만여 평의 자연녹지지역으로 바꾸는 도시계획결정변경안을 제시하여, 시의회에서 심의한 결과 지난 16일 산업건설위원회를 통과한 안을 21일 본회의에 부쳐 통과시켰다고 한다.

이유인 즉 기존의 삼계동 일대는 부지의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대학설립 예정자가 난색을 표명하자,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삼방동의 신어산 자락의 자연녹지지역으로 대학설립부지를 변경하는 방향으로 시의 도시계획결정을 변경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어산 정상은 더 가격이 쌀텐데 차라리 거기로 결정하는 것이 보다 경제적이지 않을까. 정상에 대학이 서면 멀리 낙동강을 넘어 태평양과 김해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자연경관 또한 그럴 수 없이 좋을 텐데 말이다. 그러한 발상을 하는 무리들의 뇌 구조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렇지 않아도 지금 신어산은 목하 신음 중이다. 필자는 시간이 날 때면 신어산을 자주 오르는 편이다. 신어산 정상에 올라 멀리 김해평야와 낙동강 하구를 넘어 태평양을 내려다본다. 평야는 더 이상 평야가 아니다. 넓디넓은 평야는 콘크리트 흉물로 뒤덮여간다.

일상에 지친 시민들의 발길에 신어산은 지쳐 있다. 산악자전거 도로(MTB)를 내느라 정상까지 도로가 나 있다. 편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무리는 차를 정상에 세워두고 산행을 시작한다. 산자락 구석구석은 공장들과 음식점들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내가 사는 김해시 행정의 현 주소이다.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한숨이 절로 난다. 이런 마당에 또 다시 신어산을 콘크리트 벽으로 도배질할 대학이라니….

신어산은 한갓 인간의 잣대로 재단할 수 있는 그런 산이 아니다. 역사요 문명이요 정신인 것이다. 과거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고 내일도 그래야만 한다. 그 모습 그대로 온전히 있어야만 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신어산에 대해 저질러온 우리들의 만행을 회개하는 이성 가진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자존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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