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인수·합병하듯 지방자치단체의 경영권을 장악하는 방법은 없을까. 다음주로 예정된 보궐선거 투표일을 앞두고 머리에 맴도는 상당히 발칙한 상상이다. 때마침 다음주부터 기업 인수·합병(M&A)을 목적으로 하는 펀드 설립이 허용된다. 여러 사람이 자금을 조성해 증권시장에서 주가가치가 저평가돼 있는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 모아 경영권을 인수하는 게 합법화된다는 말이다.

마산·사천시 등 시장 재·보궐선거의 열기가 체감되지 않을 정도로 차갑게 식어 있다. 냉담을 뛰어넘어 철저히 무관심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다. 무관심이 가장 강력한 거부형태라 볼 때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세상살이가 워낙 팍팍하게 돌아가니까 관심을 가질 여유도 물론 없다.

더구나 ‘불명예 제대’한 두 시장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선거라 시민들에겐 관심 밖의, 먼 나라의 축제일 뿐이다. 갑갑함을 뛰어넘어 분통 터지는 상황이다.

경제는 생산·분배·소비라는 세 축으로 이뤄진다. 이를 토대로 재화를 재창출하기 위한 끊임없는 순환과정이다. 어느 한 곳이라도 흐름이 막히면 적신호가 켜지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우리가 직면한 경제 위기 또한 이같은 기본 전제가 병목현상을 일으켜 동맥경화를 낳은 꼴이다. 지난 3년간 이 흐름을 되살리기 위해 국민 모두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해 왔는가.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기업이나 부채가 많은 부실기업의 퇴출은 일반화됐다. 수십년간 과두 또는 독점체제에서 땅 짚고 헤엄치듯 경영을 해온 기업은 몰락의 길, 청산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분위기다. 사회의 각 분야도 위기 타개의 방법으로 구조조정과 함께 내실화가 주요 가치로 등장했다. 한마디로 거품의 제거가 당면한 화두로 부상했다.

정치나 행정을 경제의 기본 틀에 대입해 보면 아예 답이 없는 형편이다. 선거는 어떻게 보면 생산과 분배를 위한 소비행위다. 자기가 사는 곳의 주인공을 뽑아 자본을 투자하고, 그것을 잘 운영해 공평한 분배가 이뤄지도록 기대하는 민주주의의 과정이다. 이 소비기대 심리가 침체돼 있다는 관측은 생산과 분배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뜻이다.

투표율이 극히 저조할 것이라는 추정이 일반적이다. 누가 되든 생산과 분배를 잘 할 것 같지 않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경제적 틀에서 보면 당연히 청산이나 퇴출의 대상이다. 소비심리를 되살려 생산을 극대화하고, 상품을 잘 팔아 이익을 남긴 뒤 적절한 분배를 실현하지 못하는 기업은 살아 남을 수 없다. 이는 IMF 관리체제가 일깨워 준 부정적이고도 긍정적인 교훈이다.

투자는 하고 싶지 않은데 세금을 낼 수밖에 없고 상전으로 모셔야 하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형국이다. 시민 참여의식이 낮다는 평가는 시대착오적이다. 투자 대상이 없는데 어떻게 뼈빠지게 번 재화를 넣고 싶은 사람이 대체 몇 되겠는가.

기업의 경우 해마다 주주총회를 통해 경영진의 신임을 묻고 소액주주들 도한 권리를 주장할 수가 있다. 소액주주들의 주식을 모아 이사진 선임을 요구하거나 경영진 교체를 결의할 수도 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잘못된 경영에 대한 책임을 묻는 제도적 장치가 갖춰지고 있는 셈이다. 또 주식시장은 잘못된 경영에 대해 냉엄하게 심판을 내리고 주가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수행한다.

안타깝게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오는 26일을 지나면 새로운 시장들이 선출된다. 초기에는 예전에 그러했듯 그럴 듯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을 위해’라고. 그러나 웬만하면 1년 남짓 남은 다음 시장 선거를 위해 과시적인 행정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간파한다. 지겨운 되풀이가 우려된다.

우리 경제는 상당부분 시장기능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 점에서 경제부문은 정치나 행정보다 몇 단계 앞서 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시장기능을 배워 소비심리를 회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앞서 말한 발칙한 상상이 현실화될지 예각을 세워 지켜보는 시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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