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라안은 서해안의 새만금 개펄 간척사업과 관련하여, 사업을 계속할 것인가 중단할 것인가를 두고 보존론자와 개발론자 사이의 논쟁이 뜨겁다.

얼마 전 필자에게도 왜 새만금 간척사업은 지속되어야만 하는지, 그 사업의 당위성에 대한 농림부와 전북도의 주장이 담긴 자료가 전북도로부터 배달되었다.

이미 이 사업에 천문학적인 국민 혈세가 투입되었고, 식량의 자급을 위해서는 농지의 확보가 불가피하며, 수자원을 확보하여 물 부족사태에 대처하여야 하고, 환경친화적 개발로 반대론자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할 테니, 사업은 마땅히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이미 투입된 천문학적인 예산은 누가 보상할 것이며, 여기서 포기하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또 머지않아 식량부족, 물 부족이 우리들의 생존을 위협할 텐데, 지금 중단하라니 말이나 되는 소린가?

환경친화적 개발, 정말 그럴싸한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농림부와 전북도의 논리라면 간척이 완성되고 나더라도 척박한 땅에서 거두어들일 것이라곤 곡식나부랭이(?)뿐일 텐데, 고전 경제학적 논리로 가득한 인간들에게 그것이 과연 성에나 찰까? 눈앞에는 공장굴뚝들이 어른거릴 테고, 널찍한 땅 위에는 신도시가 기웃거릴 텐데 말이다.

단지 쌀 생산만을 위해, 환경친화적인 개발만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단 말인가? 좀더 솔직해질 수는 없을까?

자연은 그대로 있어 자연이다. 어떠한 환경친화적인 개발도 그대로 두느니 만큼 환경친화적일 수는 없다.

물론 농지확보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쉽게 까뭉개어 농지 위에 펼쳐놓은 수도권 신도시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필자의 연구실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김해평야는 이제 평야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회색 콘크리트 벽으로 덧칠된지 오래이다.

김해벌판에 우뚝 솟은 부산광역시 강서구청이 평야의 콘크리트 더미화를 진두지휘할 태세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김해평야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있는 농지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주제에, 천문학적인 혈세를 쏟아 부어 농지를 확보한다니, 인간의 무지에 소가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다.

물은 갇히면 썩는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앞으로 물을 정화하는 기술이 진보할 터이므로, 더 이상의 물 오염은 문제없단다.

물을 정화하는 데에는 돈이 들지 않을까? 지금은 물 정화기술이 미흡해서 수질오염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일까? 시화호와 낙동강이 피식 웃는다.

또 물이 부족하더라도 맑은 물이 필요하지, 썩은 물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이 즈음 개발과 보존여부를 미래세대들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미 엄청난 재정을 투입하여 혈세를 낭비한 것은 두고두고 통탄스러운 일이지만, 사업의 지속으로 초래될 환경에 대한 더한 악영향은 현재 우리로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지구환경을 우리만의 것으로 착각해왔다. 이는 우리를 포함한 미래세대, 나아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터잡고 살아가야 할 공유자산이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미래세대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권리까지도 고려하여야 할 책무가 있다.

환경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선택이 미래세대의 운명과 직결되지만, 또 그들 역시 공유재산에 대한 당연한 권리자이지만, 그들은 현재 우리들이 내리는 정책결정에 일언반구도 간여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들이 토해내는 모든 폐기물은 고스란히 그들의 몫이니, 불합리하기 짝이 없다.

우리들은 적어도 미래세대를 고통에 빠뜨리지 않을 의무, 그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최소한의 기반을 확보해줄 의무를 진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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