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나라 언론에 초점이 되었던 찰스킹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였다. 그는 재벌도 아니요 부자도 아니다. 항공우주 관련 회사인 레이시온에서 8만 달러 정도의 연봉을 받는 평범한 중산층의 미국 샐러리맨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버려졌던 장애아이를 데려다 부모의 역할을 대신해서 키웠던 것이다. 우리 사회가 버린 오인호군을 ‘애덤킹’으로 부활시킨 찰스킹은 가족이기주의 대신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랑의 실천자였던 것이다. 우리 지역에 농아인협회에서 자원 봉사하는 다·사·모 모임이 있다. 그 뜻은 ‘다 함께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개인이기주의·지역이기주의가 팽배하여 이러한 모임을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빠지는 일이 도처에서 수도 없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는 ‘님비(NIMBY : Not In My Back Yard)’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장애인 촌이나 사회복지시설 등이 자기네 동네에 들어서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내 지역·내 가족·친지에게는 피해가 있으면 절대로 안되고 그 외 지역 남들은 어떠한 불이익을 당하여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어떤 통계를 보니 우리 국민 10%가 장애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적어도 우리 사회 30%는 장애인과 같이 고통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배우자 직계 가족을 더한다면 그러한 수치는 나온다고 본다.

우리 모두는 비장애인이 아니라 비(備)장애인(준비된 장애인)으로 태어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기계문명의 발달로 사회 곳곳에는 우리를 장애인으로 만들 수 있는 위험 요소가 갈수록 늘고 있다.

‘배우기는 어렵고 행하기는 쉽다’는 손문의 말을 역설적으로 생각해 볼 때이다. 우리는 이제 장애인의 날만 떠들어대며 형식적인 치졸한 잔치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님비’족들에게 고한다. 바로 당신들은 마음의 장애인이다. “아니, 떠들고 듣고 보고 싸움도 하는 사지가 멀쩡한데 장애인이라니”하고 항변 할 수도 있다.

필자는 그 못된 짓하는 당신들의 마음이 병든 장애라는 것이다. 또한 마음이 병들면 언제든지 신체적 장애를 입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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