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시 합포구 대외동 한 가정집 옥상, 몇 안되는 살림도구가 널려 있는 부엌, 그리고 3평 남짓한 방. 천정철(50)씨와 그의 아들 성환(가명·18)군의 보금자리다.

방 한구석 벽에 뭔가 쓰여 있는 낡은 종이가 눈에 띈다.‘아빠와의 약속’이라는 제목아래‘생활에 충실할 것·학교수업에 충실할 것·아빠와의 약속을 지킬 것·친구들과의 교우관계 원만히 할 것·웃어른께 항상 존경할 것’이라고 또박또박 쓰여 있다. 성환이가 중학교 3학년 때 천씨와 약속한 것들이다. 이 때문인지 성환이는 어릴 때부터 엄마없이 아버지의 손에 자랐지만 공부도 잘하고 모범생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이른 새벽 천씨는 한창 논술시험을 준비하는 아들을 위해 밥상 차리기에 분주하다. 성환이가 집을 나서면 천씨도 단단히 단장을 하고 공공근로에 나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대입수능을 치른 뒤 논술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성환이는 대학갈 형편이 아니지만 공부만이 가난을 벗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는 아이다.

천씨는 이런 성환이를 생각할 때면 눈물이 쏟아진다. 어머니의 사랑을 먹고 자랄 나이인 6살에 성환이는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었다. 이내 천씨도 다니던 직장을 잃고 허탈한 세월을 보내다 간 기능 악화로 그나마 남아있던 건강마저 나빠져 생활고에 시달리게 됐다.

차삯이 없을 때 성환이는 중리에 있는 학교까지 그 먼길을 자전거로 통학한다. 또 끼니를 거르는 일도 다반사가 됐다. 예민한 청소년기인 성환이가 이런 가난에 어긋날 법도 한데 친구들과 원만한 생활을 하며 정신적으로 올바르게 성장하는 것에 천씨는 고마울 따름이다.

성환의 수능성적이 가채점이지만 상위권에 든 것으로 학교는 분석하고 있다. 그는 대학입학이 유일한 희망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진학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수입이라 해봐야 공공근로로 받는 (생활보호대상자에게 주어지는) 20여만원이 생계비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월세 15만원을 내고 나면 생활비는 고작 5만원, 이 생활비로 한 달을 버텨 나가야 한다. 이런 사정으로 성환군의 입학금 등 학비는 꿈도 못 꿀 실정이다.

천씨는 “제대로 한번 배불리 먹이지도 못한 것이 안쓰럽다”며 “대학에 합격해도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하다”고 말하며 멍하니 아들의 책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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