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전시 성노예(위안부)로 강제동원한 일본의 전쟁 범죄 행위를 단죄하기 위한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은 지난 12일 히로히토 전 국왕과 일본 국가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리고 5일간의 재판일정을 마쳤다. 모의 재판 형식의 민간법정이었지만 세계 30여개국 수백명의 언론인과 증언자, 일반 참가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진행되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종전 당시 미얀마 국경에서 임신상태로 구출된 처참한 모습의 사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북한의 박영심할머니의 증언은 위안부들의 처참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 전범법정의 절정이었다.



남북검사들도 히로히토 등 8명에 대한 기소장을 공동으로 냈다. 양측을 대표한 남한 검사는 “이번 재판은 ‘지연된 정의를 위한 것’이라며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사람은 잘못을 되풀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히로히토 전 국왕에 대해 “실질적인 일본군 최고 통수권자로서 위안소 설치나 일본군의 만행에 대해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인한 공소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고, 일본국가에 대해서도 “일본군이 여성을 전시 성노예로 동원했던 것은 당시 일본이 가입, 비준했던 인신매매금지조약·강제노동금지조약 등의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유죄를 인정했다.



특히 재판부는 “전후 일본이 미국·한국 등 여러나라들과 평화협정을 체결했지만 이를 두고 이들 국가가 일본의 ‘인도(人道)에 대한 죄’에 관한 책임회피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개인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보여 주었다.

히로히토 전 국왕에 대한 유죄판결은 미국의 아시아 전략으로 인하여 전범책임문제가 유야무야된 2차대전 직후의 도쿄 전범재판 결과를 뒤엎은 것이었다. 국왕에 대한 유죄판결은 검사로 나왔던 북한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 피해자보상 대책위원회 관계자의 “위안부 문제는 일제병사 개개인의 단순한 성적 강탈이 아니라 군부에 의한 조직적인 반인륜적 범죄”라는 역설에 방청석에서 터져 나왔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최근 도쿄 고법에서는 필리핀 종군위안부 배상소송을 기각했다. 세계의 언론이 주목했던 전범법정에 대하여 일본 언론 만은 침묵했다. 행사 기간 내내 위안부는 “강제연행이 아닌 자발적인 매춘”이라고 외쳤던 일본 우익들의 행태와 반성하지 않고 책임도 회피하는 일본정부를 일본 언론이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2차세계대전의 중심축인 독일은 전후 인근국가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는 물론 물질적 배상도 마쳤다. 유태민족에 대한 만행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교과서에 실어 역사의 거울로 삼았다. 이러한 노력이 독일의 경제적 발전과 통일을 이루게 했을 것이다.

미국은 4년전 2차대전중 일제에 의해 자행된 생체실험, 종군위안부 등 비인도적인 만행과 관련된 일본 전범 16명에 대해 향후 미국 입국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미정부는 치밀한 조사를 거쳐 일제 전범 수백명의 명단을 확보하고 실제로 입국제한 조처를 취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정부는 3년전 일제 전범의 입국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해 놓고도 단 한 차례도 적용하지 않아 사실상 사문화돼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출입국 관리법에는 법무부장관이 일제 전범의 입국을 막을 수 있는 조항이 있으나 관련 명단이 전혀 확보되지 않아 지금까지 이 조항 때문에 입국을 금지당한 일본인은 하나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가 명단확보의 어려움을 핑계삼고 있지만 미국정부와의 협조를 통해서나,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관련 전문가·시민단체와의 긴밀한 협조를 통한다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미국이 일본전범 리스트를 작성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던 사람은 미국의 한인교회에서 위안부 출신 할머니의 증언을 듣고서 위안부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재미 한인변호사였다.

한국정부의 일본전범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는 한국사회 내부의 조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는 독일에 협력했던 2000여명을 사형에 처했다. 벨기에나 네덜란드도 5만건 이상을 징역형으로 다스려 정의를 올바르게 세웠다.



해방이후 우리는 일제에 기생했던 반민족 세력을 온존시킴으로써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 올바른 한일관계는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한국정부의 자주적인 대응과 일본정부의 진정한 반성과 책임배상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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