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유난히도 많은 우리나라는 눈만 뜨면 바라 뵈는 것이 산이요, 쳐다보면 푸른 하늘이다.

하늘과 산이 맞닿은 곳, 그 아래 산머리나 허리에 해가 뜰 때는 찬란한 부챗살 금빛이 아름답고 해질 녘엔 안온한 은빛이 또한 장관이다. 이 순간의 광경은 언제나 경이롭고 감동을 준다.

윤선도(尹善道·1587~1671)는 해남 보길도(甫吉島)에서 산수 자연의 수려한 경치를 보며 “석양(夕陽) 넘은 후에 산긔(山氣)는 됴타마난”하고 〈산중신곡〉을 노래하였다.

여기에 등장하는 ‘산기’는 ‘남기(嵐氣)’·‘녹연(綠烟)’ 등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 말에 해당하는 우리말로 ‘이내’가 있었다.

‘이내’는 ‘산 속에서 생기는 아지랑이 같은 기운’(문세영·조선어사전 1946)이나 ‘저녁나절 혹은 해질 무렵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 남기(嵐氣), 녹연’(조선말사전·이희승 국어대사전)이라 풀이하고 있다.

이 말은 안개를 뜻하거나 ‘양류에 내 낀 재’의 ‘연기(煙氣)’같은 것도 아니다. 또 큰바람이 일어나려 할 때 먼 산에 끼이는 보얀 기운을 뜻하는 ‘까치놀’도 아니다. 봄철 부연 황토먼지를 표현한 말은 더욱 아니다.

아마도 산과 맑은 공기와 빛이 어우러져 빚어진, 어떤 신비한 기운을 표현한 우리말이 아닐까 한다. 부드럽고 서늘한 감촉과 깨끗하고 싱그러운 향과 맛을 주는 우리의 고조된 환상을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이내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에 뛰놀던 고향산천 마을의 아련한 추억이 깃들어 있어 떠오른다. 이 말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이 넉넉해지고 순수해지는 것 같아 더없이 좋다.

“멀리 이내가 낀 하늘가를 응시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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