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라는 구절로 많이 알려진 이상의 소설 ‘날개’는 ‘내’가 아내와 함께 사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두운 일제 식민지 시대인 36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아내는 몸을 파는 여자다. 18가구가 늘어선 33번지의 일곱번째 방을 갈라서, 문도 창문도 없는 윗방은 내가 쓰고 아내는 아랫방을 쓴다. 아내를 찾은 손님들은 ‘나도 아내에게 하기 어려운 농담을 아주 서슴지 않고 쉽게 해댄다. 점잖은 내객은 자정이 지나면 으례히 돌아가지만 교양이 옅은 자들은 보통 음식을 사다먹고 논다.’

손님이 돌아간 뒤 아내가 내게 주는 돈을 모았다가 아내에게 줬더니 33번지에 살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자기 방에 재워주었다. 비를 맞아 감기가 들자 아내는 약을 먹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감기약 아스피린이 아니라 최면약 아달린이었다.

충격을 받은 나는 집을 나가 산에서 아달린을 먹고 잠들었다가,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오해를 해서 의심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죄하러 돌아온다.

그런데 ‘절대로 봐서는 안될 것을 그만 보고 말았다. 매무새를 풀어헤친 아내가 나와 내 멱살을 잡았다. 나는 그냥 나둥그러졌고 아내는 내 위에 덮치면서 살을 물어뜯었다. 뒤이어 남자가 나오더니 아내를 한아름에 덥석 안아서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 말 없이 다소곳이 그렇게 안겨 들어가는 아내가 내 눈에 여간 미운 것이 아니다.’

작품 구성을 단순화해 보면 아내는 식민 지배를 받는 민족을 상징한다. 나는 제 노릇을 못하는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이며, 손님은 일본 제국주의를 뜻하는 것으로 독자들 눈에 비쳐진다. 또 최면약을 먹은 것처럼, 식민지 현실도 일상적으로 되풀이되면 그만 무덤덤해지고 마는 것이다.

아내는 나와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동시에 결국 자신을 사는 손님(=조선을 침략하는 일제)의 다양한 모습들을 돌아가면서 보여주는 스펙트럼 노릇을 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따라서 ‘내나 아내나 제 거동에 논리를 붙일 필요는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다만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옳은지는 분간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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