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 모임이 있어 가면 나를 보고 ‘마산 신부님’이라고 부른다. 내가 어디에 살건 경남에 있다면 나는 마산 사람이다. 마산이 경남을 대표하는 도시라는 뜻이다.

‘마산 신부님’이라고 불리면 기분이 좋다. 행정적으로 마산이 경남의 대표 시이기 때문은 아니다.

현대사의 획을 긋는 혁명의 시발점 3·15의 도시·야당의 도시·경상도 깡다구가 살아 있다던 도시. 마산. 마산이 들고일어나면 정권이 바뀐다던 도시. 부정부패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운 시민들의 정신적 고향 마산.

이제 이런 말을 걷어야할 때가 왔는가 보다. 더 이상 어디서 누군가 ‘마산 신부님’이라고 하면 욕일까 두렵다.

마산 시장이 부정과 관련하여 물러나고 보궐 선거가 실시된다. 어디든 이런 일이야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다 아는 것과 같이 보궐 선거 입후보 과정에서 드러났다.

“앞으로는 힘들게 돈들이고 시간 들여서 시장 선거할 필요가 있겠냐”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앞으로 “모든 지자체 선거는 훌륭하신 두 분 지역 국회 의원께서 밀실에서 공천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숱한 인사들이 특정당의 공천을 받기 위하여 별별 모습을 보이다가 공천 탈락하니 끝이다.

시장에 출마하는 이유가 시민들을 위하여 더 큰 봉사를 하는 것이라고 떠들다가 특정 당 공천을 받지 못하니 조용하다. 한편에서는 공천 지원자를 찾지 못한단다.

부정부패는 먹이 사슬 마냥 고리처럼 엮여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 고리를 끊어 버리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들이 제시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의지이다.

제도가 조금 허술해도 청백리는 있고, 시스템이 아무리 좋아도 부패한 자는 있게 마련이다. 그만큼 나쁜 짓거리를 하고 하지 않고는 사회와 환경의 중요성 보다 사람 자신의 문제가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특정 당의 이름만 걸치면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작 선거의 주체인 시민은 별 볼일 없고 공천에만 모든 힘을 쏟지 않겠는가. 공천은 재 공천을 낳고 재 공천은 재당선을 보장하고, 결국 공천하는 자나 공천 받는 자나 당리당략과 개인적 이익을 우선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번 보궐 선거의 투표율이 사상 유례없이 낮을 전망이란다.

왜· 찍을 사람이 없는데 찍으로 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투표율이 저조하다면 과연 새로 선출되는 시장이 시민의 대표성을 가진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마산이 이웃 도시들 보다 낙후 하다고 걱정하는 시민들이 많은 판국에, 마음을 모아 마산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까· 이번 선거가 내년에 있을 선거의 전초전이라고 하는데 과연 내년에는 시민들이 공감하는 후보 등록 과정이 있을까·

선거에서 후보를 뽑는 정당 공천 제도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 지역 감정이 사라지지 않은 현실에서 지방자치 단체장에게까지 정당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하는 회의를 낳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3·15선거 부정을 목숨으로 맞서 싸워 이긴 도시 마산에서, 그 공천하는 자들이 선거부정의 고리에 연결되었다는 의혹이 제기 되고 있다면 더욱 그 공천은 불합리하게 보인다.

아직 ‘마산 신부님’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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