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3일 제82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기념일을 맞아 세종문화회관에서 임정관련 유족·광복회원 등 1300여명이 모인 가운데 기념식을 갖는다. 관련 행사로는 효창원 7위 선열 합동추모제, 독립유공자 사진전시회 및 임정요인 유족 위문사업 등이 있다.

그런데 이 행사를 지방에까지 파급시켰으면 한다. 임시정부가 당시 사분오열되었던 우리민족 대동단결의 구심점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이 임시정부가 민족정신의 결정체였다는 사실을 모든 국민에게 알려 주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의 현실에서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살펴보는 것도 매우 뜻이 있을 것이다. 임시정부는 9년간 단절되었던 한민족의 독립정부를 계승한 우리민족의 정통정부이며, 헌법과 의회제도에 기초한 민주공화제 정부로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또 의열단을 창설하는 등 독립운동을 실질적으로 지휘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육군무관학교 설립, 한인 애국단 조직, 윤봉길·이봉창 의사의 의거지원, 각국과의 외교활동을 통한 한국독립주장 등 국권을 찾기 위하여 다각적인 활동을 했다.

당시 전세계 약소국가들은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임시정부를 수립하지 못했는데 오직 2차 대전중 프랑스·폴란드 등이 외국에 임시망명정부로 잠깐 존속한 정도였다. 이것과 비교해볼 때 우리의 임시정부는 독립을 잃고 신음하던 우리민족의 정신적인 지주였으며, 1919년 수립된 후 1945년까지 무려 27년간의 세월을 절해고도와도 같은 타국땅에서 온갖 어려움을 물리치고 세계 최장기간 존속하였던 우리민족사의 찬란한 금자탑이다.

상해임시정부의 국무의원과 학무부장을 역임하고 의열단 총장을 맡아 조국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장건상 애국지사의 손자가 창원의 어느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행상으로 어렵게 살고 있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한다는 말과 같이 본인과 가족은 물론이고 가문의 몰락을 감내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가 자발적으로 그 서슬퍼런 시절에 독립운동에 쉽게 투신할 수 있었을 것인가.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해내신 그분들의 가열한 그 민족정신이 위대한 것이다.

당시 독립투사를 취조했던 어느 일본형사가 ‘조선인의 독립의사는 총칼로도 꺾을 수 없었다고 술회하면서 정말 무서운 저력을 가진 민족이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8·15 광복은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피의 대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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