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중에 일어났던 산청·함양 양민학살 사건의 희생자 유족회에서는 거창양민학살사건 희생자 유족회와 더불어 ‘거창사건(산청·함양 사건 포함) 등 관련자의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1996.1.5. 제정)’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명예회복은 되었지만 관련자에게 보상을 할 수 있도록 원하는 유족회 측의 소망이 담긴 개정안은 현재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소위원회에 계류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지난달에 산청·함양사건 희생자 유족회 요청에 의해 ‘위령의 노래’를 작사하고, 작곡가 김명표 교수에게 작곡을 의뢰했던 바, 지난주에 작곡이 완료되어 차중에서 카세트로 곡을 들을 수 있었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강물이 얼어붙던 그해 정월 초이틀 / 사람이 이슬이다 천지가 개벽이다 / 흙 파고 씨뿌린 일 그 죄밖에 없는 이들 / 스러져 원한 세월 허공 속에 떠돌았나 / 이제는 지리산 바람 자고 하늘도 물소리 빗질하고 있으니 / 님이여 잠드소서 그 날 잊고 잠드소서.’

김교수는 가사와 같이 불의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과 그 유족들에 대한 아픔을 듣고는 흔쾌히 작곡료 없이 곡을 붙여 준다고 했다. 그리고는 합창반을 동원하여 테이프에 녹음을 해와 이날 차안에서 함께 그 곡을 들었다.

곡이 마음에 든 필자는 “이렇게 곡이 가슴을 울려 줄 수가 없다. 누가 보아도 억장이 무너지는 죽음을 당한 희생자들의 사연이 곡으로 담겨지니 하나의 예술적인 격(格), 문화적인 격을 얻게 되었다. 처참하고 기구했던 희생자들이 작품 안에서 인격적 위상으로 부활하고 있는 느낌이다”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 김교수도 동감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헌법이나 법률도 국민의 삶에다 문화의 격(格)을 붙여주는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지금 거창·산청·함양사건의 희생자 유족회가 추진하는 보상에 관한 특별조치법도 그런 차원에서 하루 속히 국회가 통과 절차를 밟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거창·산청·함양사건의 보상에 관한 특별 조치법이 빨리 통과되어야 하는 것은 저간의 유사 특별법과의 형평성과 관련이 된다.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 공포된 날짜는 96년 1월 5일이고,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은 2000년 1월 12일 현재 3회나 개정되어 보상 절차를 밟았다.

거기다 ‘민주화 운동 특별법’으로 관련자 유족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제주 4·3사건의 경우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법률 6117호)으로 의료지원 및 생활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똑같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희생인데 어느 사건은 특별 대우를 받고 어느 사건은 제외된다는 것은 법의 형평에 맞지 않는 일이다.

특히 4·3사건은 진상규명이나 법적인 사실판단이 이루어지고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의료지원 및 생활지원을 가능하게 한 점은 심히 불공평한 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 경과조치 자체는 극히 전향적이고도 잘된 일이라 하겠다. 다만 사건의 실체가 명백히 규명된 사건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정부의 보상 정책 추진과 국회의 빠른 입법 절차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거창·산청·함양사건은 1951년 2월 8일부터 2월 11일까지 4일간 거창·산청·함양 일원에서 국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가 공비토벌을 이유로 주민을 대량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의 군법회의는 ‘전장 도의를 소홀히 하여 인권을 유린, 법치국가의 권위와 건전한 국군 발전을 저해했다’고 판시했다.

당시 이 사건을 즉각 폭로하고 군법 회의를 소집하기까지 목숨을 걸고 숨어다니며, 국회 조사단 파견을 비롯한 제반 법적 조치를 완수해 낸 거창출신 신중목 국회의원의 의로운 투쟁을 정부와 국회는 마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법에 의해 보호되어야 할 이 나라 국민이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혀 버린 사실을 두고 생사의 갈림길이라는 줄타기 행로를 서슴지 않고 뛰어 들어 불의에 맞섰던 국회의원이 이 나라에 있었다는 것은 분명 우리의 희망이다.

그리고 그 극에 달했던 참화를 알아듣고 그 감정의 리트머스에 눈시울을 적시는 작곡가 김교수와 같은 많은 분들은 분명 우리 사회의 가능성이다.

정부와 국회는 법률 제정의 완급과 가치가 어디에 놓이는가를 새삼 짚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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