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완상 교육부총리는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나라 교육의 실질적 목표는 아이를 명문대학에 입학시키는데 있었지 않았느냐·”고 토로한 적이 있다.

교육행정의 총수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런 진실(?)을 고백하였으니 더 이상 우리교육의 현실을 논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아니 이제는 너무 곪아서 감출 수가 없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현실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며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닥친 현상도 아닌 것이다.

교육운동에 뜻을 둔 사람들은, 80년대 중반부터 입시교육이 가져올 사회적 문제를 심각하게 우려하였으며 그 해결책을 꾸준히 제시한 바 있다.

각 학교마다 교육목표니 교육지표니 하며 온갖 그럴듯한 이상적 교육관을 나열하지만 그 실상은 ‘입시를 위해 전진하는 교육’ 그 자체이다. 오죽하면 ‘입시지옥’이라 하겠는가!

이 입시경쟁에서 아이들을 해방시키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입시경쟁교육이란 것은 국가전체의 시각에서 보면 결국 엄청난 손실인 것이다.

입시를 위한 경쟁의 장이 되어버린 교육현실은 마치 어느 한 쪽이 이기면 반드시 어느 한 쪽이 손해를 보고, 그 이익과 손실을 합하면 제로가 된다는 ‘제로섬 게임’과 같은 게 아닌가!

현실적인 측면에서 더 엄밀히 말하자면 결국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제삼자가 이득을 챙기는 기현상을 빚는 셈이 되는 것이다.

필연적인 일이지만 우리나라의 과도한 입시경쟁은 입시산업이란 기형적인 산업구조를 만들어 내었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입시구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모든 국민이 입시를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구조인 것이다.

건국이래 가장 어려웠다는 IMF통치 시절인 98년 한국교육개발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의 연간 과외비가 무려 11조9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것은 당해 연도 GNP의 2.65%에 달한다.

2000년도 교육재정이 19조2000억원이며 이 가운데 경직성 경비를 제외한 가용재원이 겨우 5조원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이며, 얼마나 비정상적인 지출이었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 투자를 필요로 하는 입시교육이 과연 학문도야와 더불어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기여하고 있는지를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입시기술을 늘리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었는가 말이다.

과외가 입시에 도움이 된다는 견해도 엇갈린다.

교육부의 99년도 교육연보와 사교육비 실태조사에 의하면 4년제 일반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았던 광주시가 과외수강 비율은 전국의 6위에 그쳤고, 과외수강 비율이 전국에서 압도적으로 높았던 서울이 막상 진학률은 꼴찌였다.

물론 과외의 정확한 효과를 측정하려면 더 과학적인 방법이 동원되어야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결코 ‘뿌린 것만큼 거두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선교사들도 과외의 효과에 대하여 불필요하다는 반응이 45.5%로 필요하다고 응답한 교사(32.9%)를 상회하고 있다. 결국 확실한 효과가 입증되지도 않은 과외광풍에 우리는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이는 ‘내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혹시 뒤지지 않을까·’하는 학부모의 막연한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며 이 불안감을 부추기는 것은 궁극적으로 대학의 서열화에 있는 것이다.

대학의 서열화가 사회의 서열화로 직결된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한 아무리 입시제도를 바꾼다고 해도 과외광풍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대학의 서열화를 전면적으로 철폐하는 운동을 범국민적 단위로 실천하지 않는 한 GNP 3%에 가까운 엄청난 국력을 매년 나라발전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입시산업에 쏟아 붓는 일은 계속 일어나게 될 것이다.

최근 현대중공업에서 사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원의 97%가 교육비용이 부담스럽다고 응답하고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중산층 가정에서는 부담을 넘어서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사교육비의 부담 때문에 자식을 더 낳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가 하면, 차라리 교육이민을 떠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고 판단하여 유학을 떠난 사람이 작년만 해도 1만5000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안타까움을 넘어서 통탄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우리나라의 건전한 발전은 물론이고 한 개인의 진지한 삶을 위한 교육으로 올바르게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라도, 아직도 입시만을 목표로 그 많은 것을 투자해야만 옳은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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