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반달가슴곰이 나타났다. 참으로 기막힐 일이다. 이 개발과 경쟁과 힘과 죽임의 시대에 반달가슴곰이 아직도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지리산 곰이 숨쉬는 공기를 우리가 함께 호흡했고, 지리산 곰이 마시던 물을 우리가 함께 나눠 마셨다는 사실을 느껴보면 우리 인간이 새삼 새로워 보일 것이다.



지리산 반달가슴곰은 우리에게 하나의 큰 희망이었다. 무너져 가는 자연생태계에 대한 희망이요, 5000년 역사 속에서 신화와 전설로 존재해온 한 생명체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요, 밀렵과 살육의 대상에서 우리가 보호해야할 이웃과 친구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에게 이처럼 고귀한 이웃이 생겼다는 사실은 축하하고도 남을 일이다.



지리산 반달가슴곰 서식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이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려의 목소리 중 단연 으뜸인 것은 밀렵꾼들의 손에 반달가슴곰이 살아남겠느냐는 것이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지리산 기슭에 밀렵꾼과 곰 사진을 찍으려는 사진작가 300여명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사실이야 어쨌거나 지리산 반달가슴곰의 영향은 이러하다.



한국은 야생동물의 지옥이라고 한다. 야생 혹은 자연산이라는 수식어는 모든 음식물의 건강성을 확보하는 용어로 변해버렸다. 인공 혹은 양식이라는 말보다야 신뢰감도 생기고 어감도 좋으니 당연히 좋은 말로 들려야겠지만 어쩐지 불쾌감과 불안함이 가슴에 먼저 자리잡으니 이 또한 어쩔 것인가. ‘세상에 자연산이 어디 있어· 다 양식이야 양식!’ 이러한 말은 횟집에 가면 으레 하는 말이 되어버렸고, 심지어는 추어탕집과 쌈밥집을 가면서도 흔히 뇌까리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자연산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벌꿀과 인삼·횟거리 생선·일부 푸성귀까지 양식이 판을 치고 있지만, 오소리나 너구리·뱀·멧토끼와 같은 야생동물은 모두가 순수한 자연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야생동물은 매일 불안하고 잡히면 보신용으로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야생동물은 보신용 살육의 대상이었지 함께 자연을 누리며 살아갈 이웃은 아니었다. 큰놈을 잡으면 돈이요, 작은놈을 잡아도 일당은 빠진다며 철사올무에 기계식 덫을 야산에서 고산지대까지 마구잡이로 설치해 놓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은 단위면적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이 90여종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의 광역시만한 동남아시아 싱가포르는 도시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단위면적당 서식하는 야생동물이 900여종이나 되는데도 말이다.



미국의 고생물학자 ‘폴 마틴’은 지구상에서 대형 동물이 사라진 원인을 빙하기와 같은 기후변화가 아닌 다른 쪽에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것은 대형 동물보다 더 잔인하고 난폭한 종이 지구의 전면에 등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논리에 의하면 그 동물은 다름 아닌 인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메리카대륙에서 매머드·검치호랑이·나무늘보 등 대형 육식동물은 약 1만년 전에 사라졌다고 한다. 1만년 전이면 기후변화가 있었던 시기는 아니다. 그 시기에 인간은 베링해를 넘어 아메리카대륙으로 진입했다. 인간의 등장과 대형 육식동물이 사라진 것이 일치하고 있다. 앞서 말한 대형 육식동물은 천적이 없었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종을 처음 만나도 전혀 경계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인간은 그들 대형 육식동물(인간의 천적일 수도 있는)을 무자비하게 살육했다는 것이다.



지금 지구에 존재하는 야생동물은 인간을 해치지 않는 동물들이다. 모든 야생동물은 인간을 경계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에 먼저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야생동물을 보신용 자연산이라는 것과 이것을 찾아 돈을 쓰는 인간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대자루에 철사올무와 기계식 덫을 가득 짊어지고 산을 오르내리는 것이다.



야생동물이 존재하는 땅이어야 인간이 살아갈 수 있다. 모기며 파리가 살아갈 수 없는 땅에서 인간은 살아갈 수 없고, 싹이 돋고, 꽃이 피지 않는 땅에서 사람이라는 동물은 살아갈 수 없다. 깨끗한 물이 흘러 땅을 적시고, 그 땅에서 온갖 동식물이 함께 살아야 마침내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이다. 지리산에서 반달가슴곰이 나타나 우리를 즐겁게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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