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 선 지 17년이 지나도록 교감 자리 하나 얻지 못해 평교사로 전전하던 나는 결국 인사권 자와 친분이 있는 대학 선배나 동료 교사 등을 만나 ‘줄대기’를 시도했다. 박봉을 쪼개 아내 몰래 모은 돈 20만원을 들고 교장에게 찾아가 좋은 점수의 인사평점을 부탁하기도 했고, 평점 관리를 위해 평가·연구보고서 심사위원들에게 과일상자를 보내기도 했다.”

소설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불거진 경기도 교육계의 인사청탁 비리사건에 연루돼 지난 3월2일 오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김아무개 초등학교 교장이 털어놓은 이야기다.

그는 ‘동료는 물론 후배들까지 자신보다 먼저 승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분필가루를 마셔가며 목이 쉬도록 아이들을 가르쳐도 그에게 돌아온 것은 벽지 학교로의 전출명령뿐’임을 한탄했다. 혼자서 한숨을 쉬다못해 승진을 결심하고 교사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교감교장의 길을 걷기를 결심한다.

승진을 위해 인사철만 되면 봉투를 준비하여 교육감을 비롯한 인사권 자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까지 만나 ‘접대 고스톱’도 불사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교감으로 승진하고 그 후 7년이 지나 마침내 교단의 별이라는 교장 자리에까지 올라간다.

교장·교감의 자리를 사고 판 경기도 교육청의 사건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경기도 교육감의 처남인 방모씨는 10여명의 교장과 교감·장학사들로부터 승진과 전보 등을 부탁하며 수십만~수백만원의 돈을 건넨 사실이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방씨가 챙긴 돈도 무려 4000만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경기도 교육청의 문제만이 아니라 승진이나 전보를 두고 일상적으로 일어났던 교육계의 오랜 관행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검찰도 교장급 인사청탁 비리가 개인비리가 아니라 도교육청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진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교장급 50여명이 연루되어 있는 이 사건에는 연고지 배정 40만~50만원, 장학관(시·군 교육청 과장급) 및 교육장 승진 500만원, 분당 등 새도시 교장발령은 100만원 가량의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평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부끄러운 교사가 교감이나 교장으로 승진하면 교육자가 되는가? 승진을 위해 아이들의 교육은 뒷전인 교원들이 얼마나 많은 지는 알 수는 없지만 교장·교감이 유능한 교사가 되는 우리네 승진풍토에서는 이러한 교원들이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비롯한 학부모단체들이 왜 학교정상화를 위한 가장 우선적인 과제가 교장·교감 보직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알만하다. 개인의 인격조차 사회적 지위로 판단하는 풍토에서는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나 긍지보다 승진을 위해 양심도 버리는 사람이 줄을 설 수밖에 없다.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육계에서 관행처럼 계속되고 있는 부정과 비리를 철저하게 조사하여 실상을 밝혀야 한다. ‘제사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교원’들이 유능한 교사로 대접받는다면 결과적으로 교육자로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교원들이 피해자가 된다.

인간의 가치조차 사회적 지위로 평가하는 현행 승진제도는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외국의 경우처럼 교장이나 교감은 관리직으로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원은 처음부터 정년 때가지 교원으로 마치는 이원적인 체계로 바꾸는 방법도 있다. 아니면 교장을 교사들이 선출하든지 보직제로 바꾸면 된다.

현재와 같이 학교장의 주관적인 평가에 의해 승진이 좌우되는 제도에서는 부정과 비리를 막을 길이 없다. 교원의 근무평가가 공정성이나 투명성을 잃으면 학교사회는 불신과 굴종의 풍토로 바뀐다. 비판이 허용되지 못하는 사회에서 발전이란 기대할 수 없다.

학교의 발전을 위해 잘못을 시정하기를 요구하는 교사는 무능한 교사로 낙인찍혀 교포교사(교장포기 교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우리 교직사회의 풍토다. 복종을 강요하는 학교에는 민주주의도 진정한 교육도 불가능하다. 학교장의 눈치를 살피며 비굴한 사람이 큰소리치는 풍토에서는 토론문화의 정착도 학교의 민주적인 운영도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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