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자기 체온 외에는 온기 한 점 찾을 수 없는 독거(獨居)는 그 추위가 더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지난 가을 이래 독거하고 있습니다. 제가 구태여 독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추위가 징역살이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도소의 겨울이 대단히 추운 것이긴 하지만, 그 대신 이곳에는 오래전 부터 수많은 징역선배들이 수십번의 겨울을 치르면서 발전시켜온 ‘인동(忍冬)의 지혜’가 마치 무인촌의 토방처럼 면면이 구전되어 오고 있습니다.”
신영복 선생이 예전에 감옥에서 쓰신 편지의 한 구절이다. 기상청에서는 11월 28일부터 명실상부한 겨울이 시작된다고 선언했다. ‘등 따시고 배 부른 사람들’에게는 겨울이 낭만의 계절일 수 있겠으나 없는 사람에게 겨울은 또 하나의 고통을 덤으로 떠안는 계절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매스컴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불우한 이웃과 함께 따뜻한 겨울을…’ 어쩌구 하면서 읊조리기 시작한다. 이런 생색내기의 대사와 이벤트성 모금 방송 가운데 어느 곳에서도 감옥 속의 양심수를 얘기하는 곳은 없다.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감옥의 겨울은 10월이 오면 이미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금강산이나 설악산의 단풍소식이 전해질 즈음 마룻바닥은 이미 냉기가 깔리고 두꺼운 벽은 햇볕의 온기를 쉬이 전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바깥은 아직 가을이 무르익기 전인 이때부터 감옥은 겨울채비에 들어간다. 쪽창에 떼놓았던 비닐을 다시 붙인다든지, 매트리스를 확보해 포개어 깐다든지, 누비옷을 다시 꺼내 손질하는 것(신입인 경우는 스스로 구해야 한다) 등등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불 속에서 손가락만 내놓아도 금방 얼어버릴 것 같은 감옥의 겨울은, 오로지 양심을 지킨다는 이유만으로 갇혀야 하는 세상이 끝장날 때만이 함께 끝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정부’라 불리는 2000년 한국의 겨울은 과연 정부의 따뜻한 정책으로 훈훈해지고 있는가· 민가협에서 집계한 한국의 양심수는 11월 1일 현재 79명으로 나타났다. ‘인권 대통령’을 자처하고 ‘인권 위원회’를 만드는 등 김대중 정부가 나름대로 ‘인간의 권리’를 위해 애쓴다고는 하지만, 79명의 양심수가 아직도 감옥 속에서 ‘인동의 지혜’를 배우고 있는 한 이 나라는 여전히 ‘반인권 국가’임이 분명하다.

더구나 IMF식 구조조정 때문에 이미 한국의 기업·금융을 차례로 잡아먹기 시작한 초국적자본이 공기업까지 요구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살인적 구조조정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은 이미 감옥행을 결심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래서 2000년 한국의 겨울에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풍경이 있으니 바로 다음달 9일에 있을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이다. 1989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12번째를 맞는 이 행사는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정기적인 ‘인권콘서트’이다. 특히 올해는 북으로 돌아가신 비전향 장기수들의 현지 생활모습, 민가협과의 평양상봉, 그리고 남녘의 벗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등을 담은 영상물이 공개된다고 한다.
올해의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추울 것이라고 기상청은 말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길고 춥지 않은 겨울이 한 번도 없었다. 겨울은 사람에 대한 생각을 다시 갖게 하고, 사람으로 이어지는 관계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우는 계절이기도 하다.

지금 내 곁에 있어서 팔짱을 끼우고 따뜻한 체온을 전해줄 수 없는 이들, 70명이 넘는 그들이 있어서 여전히 우리의 겨울은 춥다. 그래서 그들로 이어지는 따뜻한 관계의 군불을 지피기 위해서라도 애써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을 함께 해 보는 것이 어떨까?

그렇게 우리가 담장안보다 덜 추운 이곳에서 연대의 군불을 지펴 올린다면 결국 따뜻한 겨울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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