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 만화계는 한마디로 힘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큰 발전을 가져온 시기이다.



1980년 사회정화위원회에서 불량만화(·) 배포 및 제작 혐의로 만화가와 제작자를 검찰에 고발하는 사건이 최초로 일어났지만 이어 1983년에는 한국만화를 한 단계 승화시킨 만화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출간되기도 하는 등 명암이 엇갈리며 새로운 시대를 시작한다.



이 후 만화의 붐을 타고 순수 한국캐릭터로 자부심이 강한 <아기공룡 둘리>가 김수정에 의하여 출간되어 김수정의 캐릭터 등록과 아울러 이현세는 본인만화의 주인공을 의장특허 출원하기도 한다.



1980년대 중반은 만화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인정, 만화강론과 비평 등이 각계에서 쏟아져 나왔으며 강습소란 이름으로 만화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만화가의 길을 열어 주기도 하였다. 1986년 대중매체에서도 만화영화의 방영이 이루어지고 급기야 자체 제작을 하는 경우까지 발전하기에 이르러 다음해 5월 한국최초의 TV만화영화 <달려라 호돌이>가 제작되어 MBC를 통해 방영되었다. 이후 이현세 원작의 <떠돌이 까치>를 KBS에서 자체 방영하기도 하는 등 브라운관에서 만화들이 속속 쏟아졌다.



1987년 이우정을 중심으로 17인의 만화가 모임 ‘사라라회’가 발족되어 만화의 현안으로 토론을 갖고 그 당시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최초로 정부에 만화의 사전심의에 대한 비판을 제시하기도 한다. 1988년 자유화의 물결은 만화계에도 불어서 20여개의 만화전문잡지가 발간되어 만화계의 신진 등용문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1989년 10월 사단법인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설립되어 만화의 사전심의 업무를 전괄하기에 이른다.



1990년으로 넘어서면 최초로 국립공주전문대학에서 만화관련 학과인 만화예술과를 개설하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고급 만화인력 양성을 시작하게 된다. 이와 함께 만화관련인들의 조직결성의 시대라 할 만큼 많은 조직이 결성되었던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1997년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1부 발간 후 그해 5월 청소년보호법위반(음란성·폭력성) 혐의로 이현세를 검찰에서 기소하고 검·경 일제단속으로 만화방업주와 출판사 대표 등이 줄줄이 구속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그 사건으로 만화가들은 절필선언, 항의시위, 성명서 발표 등으로 만화사태라는 초유의 행동으로 그 힘을 과시하고 표현의 자유수호를 외치며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게 된다. 아직도 깔끔한 상태로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지만 만화가들의 힘의 원천은 그 만화를 즐기는 독자들의 눈에 있다는 것을 만화가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