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열정은 언제나 뜨내기와 같아/ 머무를 것을 두려워하고/ 떠날 것을 불안해하였다/ 고향에서 비를 만났다/ 고향에서 마저 비를 만나 길을 잃었다.’



평생을 떠돌며 살고 싶었고, 그것이 불가능할 바에야 여행지에 정착하는 것도 한 방편이겠거니 여긴 시인 강제윤이 20년을 바람처럼 떠돌다 결국 고향 남해 보길도까지 왔다.



해변의 검은 갯돌들과 고산 윤선도의 낙원으로 알려져 해마다 인구(3500명)보다 더 많은 숫자의 피서객들로 붐비는 섬 보길도. 보길도는 고산에게는 이상향이었고 육지사람에겐 노스탤지어와 로맨티시즘을 자극하는 곳이 되었지만 그는 결코 보길도가 낭만적인 땅이 아니었노라 한다.



시인은 유년기를 거쳐 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고산 윤선도의 실체도 분명히 보였다고 한다.



유년엔 ‘지관이었던 할아버지가 윤고산, 윤고산하시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탓으로 고산을 이웃마을 사는 할아버지쯤으로 알았고, 적어도 고산은 부용리와 부황리 주민들 가운데 살아있는 인물’로 여겨졌다.



중학교땐 ‘국어교사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것과 달리 나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못한 <오우가>와 <어부사시사>를 접하고’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죽은 사람이 산사람의 의식을 완벽히 지배한 점이 놀라웠다. 또 다시 세월이 흐른 뒤엔 또다른 모습의 고산을 만난다.



고향에 돌아와 고산의 정원근처에 둥지를 틀고 살며 다시 만난 고산은 달랐다. 세인들에게 고산은 ‘쉰한 살의 나이에 13세 소녀였던 설씨녀를 만나 평생을 사랑한 열정적 로맨티스트며, 가는 곳마다 설계한 건물을 세우고 정자를 짓고 연못을 파고 정원을 꾸민 뛰어난 건축가’로 알려졌지만 그는 그것을 오해라 한다. 고산은 ‘70이 넘어서까지 권력에 대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중앙정계의 권력투쟁에 주도적으로 개입하다 10여년간이나 귀양살이를 한 지극히 권력지향적 인물’이라는 것이다.



고산이 보길도로 들어가던 시기가 병자호란이라는 비극적 전쟁이 인조의 굴욕적 항복으로 종결된 직후였다. 51세의 고산은 제주도에 은둔키 위해 뱃길을 떠나나 바람길이 바뀌어 보길도에 정박하고 정착하게 되었다.



저자는 ‘보길도는 고산의 은둔지였을 지언정 낙원은 되지 못했다’면서, 고산이 낙원일수도 있었던 땅을 도피와 쾌락과 은둔공간으로 전락시켰다고 일갈한다.



고산이 가진 막대한 부를 민중을 위해 쓰지않고 세연정이며 낙서재며 동천석실등을 짓는데 썼고, 도탄에 빠진 민중의 신음소리 그치지 않을 때 세연정엔 <어부사시사>가락소리 끊이지않았다면서. 그래서 고산의 <어부사시사>에 어부의 현실은 없고 어부의 풍경만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면서.



저자는 또 한탄한다. 지금 이 섬에는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것이든 전승되고 있는 전통문화라고 불릴 만한 것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문화유적은 산재해있으나 문화의 불모지에 다름아니라 한다. 즐비한 횟집들, 볼품없이 네모난 슬래브 건물들, 국적불명의 양옥들로 아름다움을 잃어가는 포구의 모습과 방파제공사를 위해 아름다운 돌산 하나가 그대로 파괴되는 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서럽다고 한다.



시집엔 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들, 우리 생에서 사라져 버릴 것들, 이 생애의 한 낮에 대한’ 기록들이 있다. 동백과 눈오는 밤과 생래적 가난에 대한 것과 그리고 어머니 어머니. 강제윤 지음. 232쪽. 이학사.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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