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는 최근 전세계적으로 야망을 지닌 고등교육 학력을 가진 계급들에게 가장 유력한 신분상승 수단이 되었다. 즉 학계, 언론계, 전문가 등의 계층은 NGO에서 수지가 맞는 경력관리를 하기 위해 보상이나 대가가 거의 없는 좌파운동으로 향했던 초기여행을 포기했다.”
이 글은 제임스 페트라스(미국 뉴욕 빙햄프턴 대학 사회학과 명예교수)의 NGO비판 중 일부분이다. <월간 말> 2000년 5월호에 번역된 ‘NGO는 없다, 운동귀족이 있을 뿐’이라는 글에서 따왔다. 그의 NGO 운동가에 대한 비판은 계속된다.
“이들에겐 자신들의 조국인 진흙탕 속 마을보다는 오히려 해외에서 열리는 빈곤에 관한 국제회의장이 더 친숙하고 실제로 그런 데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이들은 가난한 농촌지역 교사들의 시위에 참여해 경찰로부터 머리를 얻어맞는 위험을 무릅쓰기보다는 ‘쟁쟁한 전문가’로서 돈이 되는 새로운 제안서를 쓰는 데 훨씬 더 능숙하다.”
페트라스는 이같은 시민운동가들이 주도하는 NGO가 급성장한 ‘진짜’ 배경을 다음의 세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첫째로 NGO는 독재시대에 불만으로 가득 찬 지식인들의 안전한 피난처로 출현했다는 것이다. 이들 지식인은 그러나 제국주의와 독재정부의 인권침해문제나, 대중을 더욱 빈곤에 빠뜨리는 ‘자유시장’ 정책에 근본적인 의문을 표하지 않았던 대가로 권위주의 정권이 무너지자마자 사실상 해당국가의 통치를 이어받을 수 있는 정치적 대체물이라는 의미의 ‘민주인사’로 대접받게 됐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제국주의적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대중운동의 상승기를 타고 탈급진적이며 탈민중적 지식인들이 정부 및 다국적 기업들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사적·공적기금들을 써먹으려는 의도에 따라 NGO가 우후죽순 급성장하게 됐다는 것이다.
셋째, NGO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 시점이 자유시장경제가 야기한 경제위기 기간과 일치하면서 지식인·학자·전문가 등이 NGO를 제2의 직업 또는 하나의 직업대체기관으로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즉 NGO의 컨설턴트 역할은 잠재적으로 신분이 하향이동할지도 모르는 지식인들에게 일종의 안전판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페트라스는 이런 배경을 통해 성장한 NGO는 신자유주의 또는 미국 제국주의로 요약되는 민중억압체제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대신 빈민 대상 무료식당을 만드는 식으로 민중을 위로하고 다독거리는 데 역량을 기울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로써 NGO는 민중들을 탈동원화시키고 민중운동을 파편화시킴으로써 그 반대급부로 전직 NGO 사람들이 마침내 정부 산하기관 운영자가 되거나 심지어는 대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직위, 예컨대 여성·시민참여·민중권력 같은 분야의 장관으로 기용되기도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페트라스의 주장을 이처럼 길게 소개하는 것은 비록 그의 NGO비판이 한국을 꼭 집어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을 뿐더러, 이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할 순 없다 하더라도 우리의 현실에서 새겨 들을만한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지난 총선연대의 활동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불법’을 감수하고 낙선운동을 벌였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그동안 합법의 테두리에만 안주하려던 시민운동의 ‘온건한’ 이미지를 상당부분 불식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민주노총과 전교조·전농 등 민중운동의 참여를 배제하고 ‘도덕적’차원의 네거티브 운동에 그침으로써 오히려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방해하고 정치불신을 가중시켰다는 비판도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당시 총선연대 참여 조건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태도를 명확히 하고 △새로운 대안정치세력의 필요성을 고민하며 △이후 이런 관점에서 민중운동과 시민운동 진영이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내걸었다. 그러나 이것은 총선연대 측에 의해 거부됐다. 시민운동의 중립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총선과정에서 몇몇 시민단체가 보여준 패권주의·기회주의적 모습도 종종 도마에 오른다. 대표적인 것이 경실련의 총선연대 불참이다. 참여연대가 주도하는 총선연대에 참여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고, 최소한 경실련의 ‘위상’에 걸맞은 조건이 돼야 참여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경실련은 총선연대의 낙천대상자 명단 발표를 10여일 앞둔 1월10일 ‘새치기’하듯 ‘총선 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했다. 당시 경실련의 ‘명단’은 졸속으로 작성됐다는 안팎의 비판을 받았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정정발표를 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는 것이다.(한겨레 6월 1일자)
경남지역에서도 상황은 좀 달랐지만 총선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개별단체가 총선연대의 방침과는 모순되는 사업을 벌이는 등 일관성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민운동의 입장에서도 민중운동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민중운동의 상당부분이 자기계급의 이익만 추구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이같은 이익단체화 경향으로 인해 대다수 시민의 이익과 배치되는 주장과 요구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전교조의 경우 지난 7월 합법화 이후 지난 시절 내세웠던 참교육이나 교육개혁 등 명분이 갈수록 희석돼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교사의 정년 등 근로조건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대다수 학부모의 여론과 배치되는 이기주의적인 경향마저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참교육학부모회 등 시민단체와 전교조가 한때 미묘한 갈등을 빚는 상황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심지어 한 시민운동가는 “민중운동은 본질적으로 이익집단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최근엔 민주노총마저 지나치게 대기업 중심의 노동운동으로 인해 이익단체의 속성이 드러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시민운동이 무조건 민중운동과 함께 해야 한다는 논리는 공허한 주장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공무원 노조의 중간단계로 시민사회에 급부상하고 있는 각 행정기관의 공무원직장협의회에 대해서도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공직협이 그동안 억눌려 있던 하위직 공무원의 언로를 틔워줬다는 긍정적인 역할이 있지만 공무원 사회 내부의 자기개혁은 외면한 채 연금법 문제 등에 대한 목소리만 높일 경우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도 있다.”
그는 이어 “공직협에 대한 충고는 전교조나 공기업 노조·금융노조·언론노조 등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면서 “전교조가 촌지문제나 채택료 비리 등에 대한 자정운동을 외면하고 언론노조 역시 언론개혁을 도외시한 채 임금인상에만 열중한다면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것과 똑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좌파 이론가들의 반론도 만만찮다. 앞의 페트라스는 “NGO운동가들이 ‘시민사회’를 약장수처럼 팔고 다니는 모습이야말로 공허하기 짝이 없다. ‘시민사회’는 하나의 단일한, 그리고 고결한 실체가 아니다. 오히려 시민사회는 아마도 금세기의 어느 때보다도 유례없이 더 깊이 분열돼 있는 계급들로 구성돼 있다”고 말한다.
민주노총 경남본부 이흥석 상임부본부장은 지난 총선시기 마창지역 몇몇 시민단체와 가진 간담회에서 “시민단체에서 말하는 ‘시민’도 결국은 노동자들이 대다수가 아니냐”면서 “시민단체가 민중적 입장을 보다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결국 앞서 시민운동의 민중운동 비판은 거꾸로 자신에게 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언론노조가 언론개혁에 앞장서야 하고, 교사노조가 교육계의 내부개혁에 앞장서야 하듯이 시민운동가들 역시 자신이 서있는 자리, 자신이 소속된 직장과 직업 내부의 개혁부터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나 시민운동가가 자기 내부의 문제를 쉬쉬한 채 대외적인 비판과 주장만 계속할 경우 이 또한 ‘시민’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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