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하고 공정하지도 못한 사회현실을 호도하고, 부익부 빈익빈 사회에서 빈자도 성공하고 잘 살 수 있다는 신화를 유포하여, 안으로는 우리의 부와 권력을 공고히 하고 밖으로는 저들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항구적 지배를 꾀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유언비어를 만들어 내어야 한다.’(<지배자 권리헌장> 중에서)



1970년대 침묵만을 강요당하던 시대에 정권유지를 위해 ‘유언비어 날조’라는 희한한 죄목을 만들어 ‘자유’와 ‘민주’를 말하던 애국자를 불순 분자로 몰아 처벌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을 위한 유언비어를 날조하였다.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가난한 자들의 한을 희망으로 왜곡시키는 기대에 가득 찬 노래가 온 나라를 뒤덮게 하였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환상은 한강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펼쳐지는 TV 화면 속으로 불쌍한 서민들을 빨려 들어가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이 땅의 지배자들은 끊임없이 유언비어를 날조해왔고 지금도 변함없이 그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그들은 이것을 ‘대중세뇌’의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삼은 것이다. 그들은 지배자 권리헌장을 만든 필자를 유언비어 날조 및 유포자라 단정할 것이다. 말할 자유가 있다고 해서, 처벌받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70년대와 다른가· 불행히도 그 본질에서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구두 닦이 소년 서울대 합격’ ‘연탄 배달부 자녀 서울대 과 톱’이라는 신화가 사라진지 오래인데 ‘학교는 공정하므로 그 결과는 노력여하에 달려있다’는 지배자의 유언비어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망령처럼 떠돌고 있다. 서울대생 절반이 권력층 자녀라는 사실은 공교육의 황폐를 잘 웅변해 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제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가 교육의 불평등을 가속화시켜 ‘교실붕괴’는 예방의 차원을 넘어 치료불가능의 상태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결정하고 나아가 장래의 사회적 지위로 이어지는 사회에서, 우리는 공교육의 공공성을 절대로 기대할 수 없다. 허물어진 공교육의 폐허에서 고뇌하는 교사와 못난 부모를 원망하며 절망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희망이 없는 학교현장에서 어떻게 학습지도, 인성지도가 가능하겠는가! 학교에는 놀러오고 공부는 집에서 일류 가정교사로부터 배우는 부유층 자녀들만이 ‘학교야 놀자!’를 외칠 것이다.



나는 지금의 교육위기가 제도와 여건을 정비하지 않은 채 정책을 무리하게 기획하고 집행한 교육당국의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필요로 하는 사회에서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 간다. 무시험으로 대학 간다’는 들뜬 분위기는 잠시, 학생과 학부모는 교육당국도 교사도 믿을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학교는 자신의 학습을 위해서도 장래의 희망에 대해서도 답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공교육 파탄의 책임은 다른 지면에서 다시 묻겠거니와, 여기서는 ‘어떻게 학교를 살릴 것인가’라는 점에서 한 가지 대안을 제시하려 한다.



학교를 살리는 길은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공교육의 내실화에 있는 것이다. 정보와 지식의 풍부한 공유가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항이다. 먼저 교사가 충분한 정보와 자료를 활용하고, 학생들에게 각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올바로, 효율적으로 이용하도록 하는데서 정보의 공유는 시작되고 끝난다. 학교에서 활용되는 지식과 정보는 특정 계층의 정보 독점이나 소외를 극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학교도서관을 세우는 것이다.



지식과 정보의 소외가 학교에서만은 있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학교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존립근거 그 자체를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해소는 혁명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교육의 불평등 해소는 학교에서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학교도서관은 정보와 지식의 소외로부터 민중의 아들·딸들을 구출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의 불평등해소가 사회의 불평등을 극복하는 세상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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