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한파가 피부로 느껴지면서 사회곳곳에서 가정붕괴의 신음이 들려온다. 경제적인 이유로 이혼하고 자녀에 대한 책임마저 저버리는 이러한 사례는 ‘기초공사’가 덜 된 가족이 ‘경제사정의 어려움’이라는 일단의 계기에 파국을 맞은 꼴이다.

가족문제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한가지의 원인만 부각시키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파국을 맞는 가족은 평소 지나치게 경직된 관계였거나 억압된 구조속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젠 의식의 기저를 조종해온 ‘가족이데올로기’도 구조조정될 수 밖에 없다. 이와 더불어 가치관의 변화를 선도해나갈 국가차원의 가족정책 수립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가족이데올로기는 변하고 있나

그동안의 시리즈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가족의 규모 형태 기능 가족관계는 점점 현대화하는데도 가족생활을 규정하는 규범은 대체로 전통적 가족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결혼규범 남성에 대한 가장규범 여성에 대한 현모양처 규범 효규범 등이다. 많이 변했다고 하는데도 알게 모르게 가치관 깊숙이 자리한 가족규범은 가족생활을 점점 불편하게 하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억압적 굴레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가족규범이 정립되어야만 가족범죄현상도 줄일 수 있고 가족생활과의 괴리감을 없앨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러한 규범들은 일종의 이데올로기처럼 자리해왔다. 특히 결혼한 남성은 가족부양의 책임을 지고 나아가 대외적으로는 가족의 대표자로 활동하며 가족내부적으로 지도권 지배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설적으로는 이것이 남성개인에게는 버거운 짐이 되기도 해서 자신의 경제적 능력이 신통치 않은 것으로 드러날 때 남성들의 자아는 심하게 상처받는다. 그러다보니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내는 현실에 부닥치면 남성의 심리적 파탄이 생기게 된다. 하층 빈민가에서 남성들의 폭력이 심하게 나타나는 양상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오늘날에도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여전히 중요한 덕목으로 되어있는 것이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다. 바로 모성애라는 자질 심리적 특성에 기초한 모성역할이다. 현모양처 역할론은 사회복지제도가 전무한 상태에서 부모부양 자녀양육의 물질적 정서적 책임을 여성에게 지우면서 가부장적 가족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기능해왔다.

효 이데올로기는 더 심각하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압도해가는 현대의 변화한 가족생활과 여러가지로 불협화음을 드러내고 있어 노부모 며느리 아들에게 따뜻하고 만족스런 삶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다. 핵가족 가치가 자리잡은 상황에서 노부모들의 위치는 구조적으로 불안정하게 변해버렸다.

□다양해지는 가족형태

물론 가족 이데올로기는 조금씩 모양새를 달리하고 있다. 우선 결혼관이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뀌고 있다. 덩달아 독신인구도 는다. 가장권은 상실되고 있고 가장중심에서 가족중심으로, 권위중심에서 협조중심으로 바뀐다. 시인 배한봉(창녕)씨 가정은 아내가 밖에서 일하고 남편이 육아를 하는 케이스며, 이러한 남녀역할 교체현상은 갈수록 늘고있다(인터넷과 출판가에도 사례가 많이 등장한다).

어머니의 모습도 희생적인 역할에서 자아회복상으로 바뀐다. 슈퍼우먼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여성들도 있다. 가족지향적인 모성역할을 변경해 자신에게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효규범도 변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문제는 있다고 봐야한다. 부모부양은 장남만의 책임이 아니라 아들 딸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의 전환이 이뤄지지만 이는 또다른 불화의 불씨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부모 모시기에도 다양한 변형이 모색되지만 이를 효의 관점으로서만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부모부양가족에 혜택이 주어지는 방향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더구나 현대의 가족관계는 영속적인 절대관계가 아니다. 사망 이혼 별거 미혼모 등 다양한 이유로 한부모가족 등 여러가지의 형태가 등장한다. 지난 7월 경남여성회 부설 성가족상담소가 마련한 ‘한부모가족 여름캠프’에서 논의됐듯 이들 한부모가족이 겪는 어려움은 경제적 정서적 대인문제, 자녀양육 역할 재조정 문제 등 다양하다.

그 중 첫째는 아무래도 자녀양육이다. 이혼할 당시 중요한 장애요인 1위가 자녀양육이라는 결과도 있는 것처럼 자녀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 심각하다. 우리나라의 관행상 이혼후 자녀양육은 남성이 맡는 경향이 있어서 재혼가족의 경우 계모가족이 가장 많다는 통계가 있다.

그런데 대중매체는 다양한 가족들이 심리적 저항감을 느낄 정도로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에 충실하다. 드라마의 경우 특히 대가족 형태를 많이 보여준다. 그러나 실제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1998년 현재 도시가구중 부모와 동거하는 가구가 15.7%, 부모와 동거하지 않는 가구 84.3%라고 한다. 사정은 이러한데도 일일 주말 드라마 등이 3세대 이상의 대가족을 소재로 하는 것은 현실사회의 변화를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들을 수 밖에 없다.

□시급한 가족정책

가족형태가 핵가족과 직계가족 중심에서 맞벌이부부가족 한부모가족 독신가구 노인단독가구 등 다양하게 변함에 따라 가족기능도 변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가족의 양상은 다양하지만 이들 가족이 갖는 공통사항은 몇가지로 압축된다. △기혼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늘어나 자녀양육의 문제가 심각해진다든지 △평균수명이 연장됨에 따라 노인인구가 증가, 이들의 여가선용이나 사회참여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며 △이혼 등으로 한부모 가족이 되는 배경엔 가정폭력이 있다(남편의 가부장적 잠재의식에서 아내학대가 시작되고 이는 아동학대를 유발하고 자녀는 자라서 폭력을 휘둘러 폭력이 전수되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연결된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가족정책은 요보호대상가족을 위한 모자가정 소년소녀가장가족을 포함한 생활보호대상자를 위한 제도가 있고, 개인적 사회서비스의 차원에서는 임신 및 출산 낙태 및 불임수술 피임상담을 실시하는 모자보건사업, 한부모사업 지원, 매맞는 아내가 피신할 수 있는 쉼터 등이 있다. 일반가족을 위한 정책으로는 아동보육정책 노인정책 등을 들 수 있다. 방향설정자체가 가족 삶의 질 향상보다 복지적 성격이 짙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으로 가족정책의 방향은 가족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요보호대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좁은 의미에서의 복지정책뿐만 아니라 가족구성원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가족문제를 예방하고 그들을 사회내에 통합시킬 수 있는 광의의 사회정책으로 전환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국가차원의 가족정책 전담부서를 만드는 등의 예방차원의 정책을 수립해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끝>

※도움말 = 창원대 아동가족학과 김은경교수 경남가족상담연구소 김도애소장, 참고문헌 = <한국가족문화의 오늘과 내일> <사회와 가족> <변화하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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