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 도롱뇽 소송 현장검증 있던날

번 산행은 유달랐다. 지난 15일, 고속철도가 터널을 뚫고 천성산을 관통하는 데 맞서 도롱뇽이 원고가 돼 제기한 소송의 현장 검증을 따라 나선 것이다.
보도를 통해서는 천성산에 과연 도롱뇽이 살고 있는지를 따져 보는 데 현장검증의 목적이 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고속철 관통이 천성산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런저런 잣대로 재어보는 데 있었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자연을 찾아’라는 취지에 가장 걸맞은 걸음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천성산 꼭대기(922m)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화엄벌에서 시작해 2정상(811m)을 거쳐 천성산 일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짜기라는 법수계곡으로 내려오는 길이었다.
도롱뇽의 대리인 노릇을 하고 있는 지율 스님은 산꼭대기 공군부대를 지나오면서 “옛날에는 산자락을 차지한 군부대를 원망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조금은 역설적으로 들렸는데, 옛날에는 들어선 군부대가 자연을 망가뜨리는 데 대해 안타깝고 좋지 않게 생각했으나 이제는 경제 논리에 따라 진행되는 개발이 너무 심해서 그나마 군부대가 있는 데는 개발이 안되니 덜 망가진다는 얘기였다.
재판장을 맡은 울산지법 윤인태 부장판사 등 재판부를 비롯해 피고인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사람들, 원고들과 함께 천성산 꼭대기에 서니 차가운 겨울 바람이 세게 불어닥친다.
다들 마음까지 시려지는지 어깨를 움츠리는데 발 아래에는 채 녹지 못한 잔설이 군데군데 깔려 있고 아래쪽으로는 널찍한 평원이 펼쳐졌다. 화엄벌이다.
천성산(千聖山)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는 곳이다. 신라시대 원효가 천(千)명 대중을 모아놓고 여기서 화엄경을 설법해 모두 성인(聖人)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1000명을 빽빽하게 붙여 앉히면 별로 넓은 공간이 아니어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 화엄벌은 이른바 평지의 개활지처럼 활짝 트여 있다.
겨울이라 많이 메말랐지만 늪지의 자취가 남아 있는 몇 군데 맨 땅을 빼면 온통 마른 갈대로 덮여 있었다. 이렇게 위에서 내려볼 때는 그냥 넓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지만 길 따라 내려가 보니까 느낌이 달랐다.
리께를 살짝 웃도는 갈대밭에 몸을 담고 올려다보는 갈대 언덕이 인상적이었다. 마루금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갈대들이 쫙 퍼져 있다보니 마치 끝없이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갈대밭 옆으로는 떨기나무들이 옹송그리며 모여 있는데 이것들이 모두 철쭉이라고 한다. 얼마 안 가 봄 오면 과연 장관이겠다 싶다.
일행은 이렇게 마루를 타고 골짜기를 하나 가로질러 제2정상으로 간다. 40분쯤 걸려 닿은 제2정상은 멀리서 봐도 눈맛이 시원한데 평원으로 이뤄진 정상과는 달리 뾰족뾰족한 바위들이 온통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중생 감싸는 부처님 품처럼, 인간 꾸짖는 사천왕 기세로

바람은 여전히 사나운데 땀까지 식으니까 더욱 춥다. 원고와 피고는 여기서 고속철도 터널 관통이 천성산 지질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한바탕 다퉜다. 바로 아래에서는 중년 부부 등산객 서너 쌍이 모여 앉아 점심을 먹으며 담소하고 있고.
기서 법수계곡을 향해 서면 오른쪽으로 화엄벌이 눈에 들어온다. 누렇게 마른 풀빛으로 길게 뻗은 모양이 여유로운데 왼편으로 산맥이 줄기차게 내달리고 뒤편에는 울산 시가지가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
법수계곡으로 내려간다. 아주 비탈진 이 길을 20여 분 걸으니까 법수계곡에 가 닿는다. 골짜기 양쪽에서는 말 그대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성큼 다가선다. 어두운 청색을 띠는 기암괴석들이 즐비하다. 보통 때 같으면 물이 많아서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걸어야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라 골짜기를 그대로 타고 내려가도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골짜기 바위들의 아름다움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셈이다. 저마다 한껏 뽐을 내며 서 있는 바위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 바위들이 하도 커서 웬만큼 거리를 두어도 사진기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건너편으로 이불 홑청같이 넓고 푸르게 펴져 있는 절벽 한가운데는 졸졸 흐르던 물줄기가 얼어붙어 하얗게 빛나고 있다.
덕분에 내려오는 시간 30여 분이 전혀 지겹지 않다. 오히려 풍경에 정신을 파느라고 발아래 제 멋대로 흩어져 있는 바위들이 더욱 위험할 지경이었다. 다 내려와 미타암 아래에서 보는 골짜기 풍경도 그럴듯하다. 전봇대에 걸린 전깃줄만 아니라면 더욱 멋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천성산은 그러니까 두 얼굴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저쪽 너머 화엄벌은 아주 흙으로 뒤덮여 부드러운 곡선을 자랑한다. 반면 이쪽 법수계곡은 흙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날카롭고 가파르다. 바위들이 근육과 골격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놓고 몸매를 자랑하는 격이다.
이 같은 천성산의 두 얼굴을 모두 보려면 원효암에서 올라가 화엄벌과 제2정상·법수계곡을 차례로 눈에 담은 다음 미타암으로 내려오는 길을 잡으면 된다. 거꾸로 미타암에서 시작해 원효암으로 내려와도 되지만 올라가는 길이 너무 가팔라 부담스럽다.
미타암에서 출발할 때는 미타암 못 미쳐 500m를 더 가야 한다는 표지판이 나오는 데서 법수원 표지가 있는 오른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법수계곡의 바위들을 눈에 담을 수 없다.

찾아가는 길

22개 늪과 12 계곡을 품고 있는 천성산의 아름다움은 경남보다는 부산에서 더 알아주고 있다. 아마 양산이 마산·창원이나 진주에서 먼 반면 부산과는 가깝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양산으로 바로 가는 버스편은 오히려 드물고 편하게 가려면 오히려 부산 동래 버스터미널을 거쳐야 한다.
어쨌거나 마산이나 진주에서 제 차를 몰고 가려면 남해고속도로를 타야 한다. 길 따라 가다가 서김해쪽으로 나간 다음 동김해를 지나 북부산으로 빠져나온다. 다시 곧바로 이어지는 대동 요금소를 거쳐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선 다음 다시 양산 나들목으로 나와야 한다.
오른쪽으로 나 있는 35번 국도를 따라 15분 가량 달리면 대석마을이 나온다. 이쯤에서 속도를 늦추고 오른쪽을 유심히 보면 홍룡폭포와 홍룡사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이 길로 접어들면 되는데 홍룡사를 출발점으로 삼으면 원효암까지 1시간, 화엄벌까지 다시 40여 분이 더 걸린다.
만약 동래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탈 경우는 울산행 버스를 타고 가다 대석마을에서 내려야 하는데 마을 들머리에서 홍룡사까지는 걸어서 40분 남짓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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