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릿발친 흙길 더듬어 겨울산에서 봄 상상

너른 들판과 산고개를 가로지르며 뻗어나가는 길. 의령군 봉수면에 접어들어 면사무소를 살짝 지나면 오른쪽 산중턱에 마을이 하나 달려 있다. 여기가 국사봉 오르는 들머리가 된다.
국사봉의 매력은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산이 깨끗하고 가파르기도 덜해 오르기가 쉽다는 데 있다. 정상에 오르면 밑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바위봉우리들을 숨겼다가 보여주기도 하고 눈이 시리도록 시원한 전망도 한꺼번에 다 내어준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오른다. 90년대만 해도 이 골짜기에는 절이 없었는데 무슨 절이 그 새에 세 개나 생겼나보다. 문수사와 국천사 그리고 또다른 절 하나를 일러주는 표지판이 자리를 잡고 섰다.
길은 꼬불꼬불하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 임시로 지어놓은 건물 같은 문수사를 뒤로 젖히고 5분도 채 안 걸리지 않지만, 걸으면 40분은 족히 더 가야 갈랫길이 나온다. 하나는 국천사 가는 길, 다른 하나는 또다른 절로 이어지고 나머지 하나는 산중 마을로 타래를 풀어놓았다.
국천사 표지판이 있는 길로 접어든다. 길 가운데 고인 물은 간밤에 찬바람을 만나 얼어버렸다. 아이들과 함께 왔다면 이쯤에서부터 신이 났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는 바삭바삭 얼음 깨는 재미가 좀 좋은가.
게다가 어쩌면 어울리지 않게, 길섶에는 보랏빛 꽃송이들까지 하늘거린다. 구절초와 구분이 잘 안되지만 쑥부쟁이라는 들풀이란다. 이리저리 흔들려 가녀려 보이기도 하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다짐을 하는 모양은 꽤나 씩씩해 보인다.
이렇게 30분 남짓 자동차도 다닐만한 길을 걷다 보면 산불조심하라는 노란 깃발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경운기가 다님직한 길이 나타난다. 아직 누구도 밟은 표시가 없는 이 길도 밤새 얼어 붙었다. 그렇지만 물이 고인 데가 없다 보니 서릿발만 하얗게 솟았다.
서릿발, 제대로 된 놈을 본지 참 오래 됐다. 흙이 머금었던 축축한 물기가 지난 밤 날씨가 추워지면서 얼음이 되어 부피가 커지면서 흙 표면을 뚫고 올랐다. 머리에다 짚이나 흙을 살짝 덮고 바늘처럼 가느다란 모습으로 촘촘하게 박혀 있는 것이다.
다시 아이들 생각이 난다. 아래에서 얼음을 깨뜨렸을 아이들은 여기서는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이야!’ 소리를 내지르며, 산아래 도시서는 보기 드문 자연 현상에 눈을 갖다 대고 한참 재미있어도 하고 손으로 쓰다듬기도 하다가 마침내는 사뿐히 내리 밟으면서 아사삭아사삭 허물어지는 소리를 즐겼을 것이다.
게다가 모퉁이를 돌 때마다 제각각 모양과 규모가 다른 채로 자꾸자꾸 나타나 주니 어쩌면 나중에는 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이런 즐거움은 겨울이라 해도 사람 많이 괴지 않고 그야말로 호젓한 산길을 찾았을 때만 누릴 수 있겠다 싶다.
이렇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르다 보면 금세 무와 배추를 기르는 밭이 나타나고 왼쪽에 좁다란 산길이 눈에 들어온다. 국사봉 꼭대기는 여기서 20분 거리에 있다. 마루금을 타고 걷는 길은 그저 평탄하기만 하다.
조금씩 오르내림이 있어서 산길임을 느끼게 해 줄 뿐, 전혀 힘들지 않아 오히려 조금은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들 정도다. 물론 양옆으로 늘어선 나무들 사이로 산아래 들판 풍경이 호방하게 내비치고 이제는 한 번씩 햇빛을 되쏘기 시작한 남강의 지류들이 하얗게 빛난다.
산마루는 온통 바위로 이뤄져 있다. 아래에서는 죄다 흙으로 뒤덮인 이른바 육산(肉山)으로만 보였는데 산 위에는 크고작은 바위들이 저마다 알맞게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높이가 해발 688m밖에 안되지만 전망 또한 빼어나다.
이 바위 저 바위 옮겨다니며 산아래를 바라보는 맛이 아주 좋다. 미타산으로 이어지는 서북쪽을 빼고는 모조리 그지없이 열려 있다. 바위에서 바위를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바위 틈새에 무성하게 자리잡은 저 떨기나무들도 이제 곧 제 철을 맞으면 봄꽃과 여름잎을 마음껏 피울 것이고 그러면 지금보다 더 바위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찾아가는 길

마산·창원에서 제 차를 갖고 간다면 남해고속도로를 따라 진주쪽으로 가다 군북나들목에서 빠져나오면 된다. 진주에서 온다면 당연히 반대 방향이 되겠다.
군북나들목에서는 오른쪽으로 꺾어들어 곧장 달리면 의령 읍내가 있다. 읍내로 들어가지 말고 들머리에서 국도 20호선을 타고 창녕·적포 가는 길로 줄곧 20km를 내달린다.
용덕·정곡·유곡면을 차례로 지나 신반 마을이 있는 부림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차를 오른쪽으로 집어넣는다. 곧바로 마주치는 동동삼거리에서 공사가 한창인 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왼쪽으로 틀어야 한다. 국가지원지방도 60호선으로 이어진다. 7km쯤 더 가다가 봉수면 소재지 죽전마을에서 달리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 면사무소를 지나자마자 나오는 마을인 사현(沙峴)마을에서 등산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가려면 마산에서 의령으로 간 다음 신반행 버스로 갈아타는 방법도 있지만 마산에서 곧바로 신반까지 1시 30분 걸려서 가는 차편이 낫다. 아침 7시 20분 첫차를 시작으로 9시 10시 11시 12시 30분 1시 30분에 떠난다. 신반에서 돌아오는 차편은 아침 6시 30분부터 비슷한 간격으로 있는데 국사봉에 올랐다가 온다면 아무리 서둘러도 오후 1시 20분이나 2시 20분, 3시 30분, 4시 40분, 5시 40분, 7시 5분 차편밖에는 안되겠다.
국사봉의 또다른 매력은 가까이에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의 생가와 임진왜란 의병장인 곽재우 장군의 유적지가 있다는 점이다. 이것들을 한꺼번에 둘러보려면 아무래도 자가용 자동차를 끌고 가는 편이 편하다.
백산 생가는 바로 옆 부림면 입산 마을에 있다. 표지판이 잘 마련돼 있어 놓칠 염려는 없지만 돌아오는 길에 처음 만나는 다리에서 왼쪽으로 접어들면 된다. 생가는 그럴 듯하게 마련돼 있지만 독립운동의 내력까지 풍성하지는 않다. 42년 체포돼 이듬해 병사하기까지 선생의 활동을 미리 알고 가면 훨씬 낫겠다.
곽재우 유적지는 여기서 좀더 나오다 만나는 유곡면 세간리에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커다란 은행나무와 현고수(懸鼓樹)라는 느티나무가 있다. 은행은 줄기의 모양이 여자 젖꼭지를 닮아서 옛날에는 젖이 잘 나오지 않은 아낙들의 치성이 많았다고 한다.현고수는 북을 거는 나무라는 뜻인데 곽 장군은 여기에 건 북을 쳐서 모은 의병으로 낙동강을 거슬러 오르는 왜적을 정암 나루에서 물리치고 임진왜란 첫 승전고를 울렸다.
게다가 신반은 예로부터 이름이 널리 알려진 마을이었다. 물길을 따라 물산이 흩어지고 모이고 하는 데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도 5일장이 크게 서는데 4일과 9일에 맞춰 가면 새로운 느낌을 맛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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