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다보면 참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 아직도 성폭행사건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피해자가 먼저 수치스런 감정을 갖고 쉬쉬한다. 그래서 막상 폭행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시간만 보내다 증거확보조차 못하기도 한다.

어른에 못지 않게 빈도수가 증가하고 있는 아동성폭행의 경우 더 심각하다. 사건발생후 부모가 아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정신치료를 해줘야 함에도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지레 축소·은폐하려는 경향까지 보인다.

최근들어 접한 상담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절실했다. 내담자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피해보상과 함께 가해자를 처벌할 수도 있는데 내담자가 너무 현실을 모르는구나, 심지어는 진단서 끊을 돈조차 없어서 시기를 놓쳐버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참 속상했다.

40대의 박여인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결국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었다. 오로지 종교에만 의지해 풀빵장사를 하며 악착같이 살아보려던 여인은 평소 여러면에서 성의껏 내담자를 배려하는 듯한 남성을 알게됐다. 유부남인줄 전혀 모른 채 마음을 뺏긴 여인은 반강제상태로 성폭행을 당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의도적인 접근에 이용당했다는 것,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상담소를 찾았으나 아무런 증거물이 없어 말그대로 상담만 해줄 수밖에 없었다. 김여인은 병원에 갈 여유가 없어 진단서도, 하다못해 의사의 소견서도 마련해놓지 못했던 것이다. 피치못해 성폭행을 당했을 때 꼭 진단서를 끊어놓아야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초교 고학년생인 한 아이는 학교내에서 외부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다행히 교사의 도움으로 경찰에도 신고하고 치료도 받는 등 대처를 잘 했었다.

하지만 부모, 그중에서도 아버지는 남부끄러운 일이라 여긴 나머지 아이가 받을 고통은 염두에 두지않고 상담소에서 정신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지만 일언지하로 거절하고 말았다.

성폭행은 언제, 어디서나, 내 가족중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특별히 열악한 환경에 처한 사람이 대상이 아니다. 남녀 모두의 인식전환과 대처요령 등 교육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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