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이색적인 곳을 간다며 ‘주남저수지’를 다녀오는 바람에 정작 총각기자는 단풍 소개만 해주고 단풍이 전하는 ‘가을의 정취’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 단풍은 봐야 한다는, 더늦기 전에 단풍을 눈에 담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어디갈까?’ 고민을 많이 했다. 발목도 시원찮고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 산 정상까지 오르기는 무리라는 판단을 내리고는 심사숙고한 끝에 고른 곳이 고성 옥천사(玉泉寺).
옥천사는 고성군 개천면 북평리 연화산(蓮花山) 북측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옥천사는 670년 신라 문무왕 10년에 의상이 창간한 절로 역사가 깊고 오래된 명사로 이름나 있다. 옥천사라는 이름은 대웅전 뒤에 옥 같이 맑은 물이 끊임없이 나오는 샘이 있어 불리게 된 것이다.
지금 있는 절의 모습은 물론 670년 당시에 세워진 절 그대로는 아니다. 1208년 고려 희종 4년에 진각국사 혜심이 중창했고, 임진왜란 때 다시 소실됐다가 1640년 조선 인조 18년에 학명과 의오가 중창한 것이다. 이후 1883년 고종 20년에 용성이 다시 중건했고, 1919년에 영호가 두차례 중수한 것이다. 기자가 찾았던 지난 일요일에도 옥천사에서는 일부 보강공사가 진행중이었는데 그래도 단풍 구경에는 차질이 없었다.
옥천사를 찾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다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는 번거로움만 있을 뿐이다. 개천마을에 내려 먼 산을 바라보며 한번 심호흡을 가다듬고 본격적인 탐사(?)에 들어간다. 초입에 있는 감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까치밥’을 준다고 감을 하나둘씩 남겨놓았는데 왠지 쓸쓸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옥천사 입구까지 제법 걸어들어가야 한다. 쉬엄쉬엄 30분은 족히 걸릴 듯 하다. 꼬불꼬불 난 길은 잘 닦여 있어 걷는데 무리는 없으나 다소 심심하다. 드문드문 있는 집들에서 조그마한 개들이 낯선 객을 보고 짖어대는데 여간 사나운게 아니다. 순간 놀래 식은 땀이 절로 흐르기도 한다.
옥천사 입구 직전에는 매표소가 있고, 매표소 옆에 자그마한 저수지가 하나 있다. 그렇게 깨끗한 저수지라고는 할 수 없지만 때마침 물 위로 드리워지는 나무들의 자태와 수면 위에 비치는 그들의 그림자들이 아름답게 눈에 들어온다. 마침 햇살마저 강하게 내리쬐니 반짝하며 빛을 발하기도 한다. 저수지 가에 걸터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담배 한 개비 피워물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지금부터 코스가 정말 장관이다. 솔직히 옥천사의 매력보다는 옥천사 입구에서 옥천사에 이르는 오솔길이 정말 마음에 든다. 오솔길 오른쪽 우거진 숲속에서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깨끗한 계곡물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가 산뜻하게 들려온다. ‘옥천’이라는 이름에서 유추한 것이 아니라 주위 풍광들과 어우러져 소리만 들어도 깨끗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혼자만의 입장은 아닐 것 같다.
오솔길 좌우로 줄을지어 서 있는 나무들은 각각 다른 색들을 내면서 가을 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있다. 단풍 절정 시기가 지나기는 했지만 절정에 비견할 만하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은 아닐 것 같다.
어떤 것은 자기들의 고유의 색깔, 짙은 녹색을 그대로 갖고 있기도 하다. 또 다른 것은 강렬한 붉은 색을, 화사한 연분홍색을, 짙은 노란색을, 우수에 젖은 갈색을 갖고 있기도 하다. 독특하게도 어떤 것은 절반은 푸르름을, 절반은 가을빛을 담고 있는데 옥천사를 찾은 손님을 위한 배려일까? 갖가지 색들이 연출하는 영상미는 붉음으로 대비되는 단풍의 그것과는 다른 멋이 들어있는 듯 하다.
옥천사에는 현재 대웅전(도유형문화재 제132호)을 비롯해 자방루(도유형문화재 제53호), 심검당, 적묵당, 명부전, 금당, 팔상전, 나한전, 산신각, 독성각, 칠성각 등의 건물들이 남아있다. 또 유물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특이한 점인데 오후 4시 이전에는 가야 둘러볼 수 있다.
이들 건물들은 그 동안 여러차례 재건되고 중수되는 과정을 겪었기에 창건 당시의 것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모두 큼직한 모습에서 웅장함을 자랑한다. 또 지붕이 연꽃무늬처럼 배열되어 있어 아름다움을 가미하고 있다. 대웅전은 1745년 영조 21년에 창건된 목조 건물인데 보물 제495호인 옥천사 임자명반자(壬子銘飯子)가 보관되어 있다. 임자명반자는 고려 1252년 고종 39년에 동으로 만든 악기인데 불교의식에 사용했었다고 한다. 또 삼장보살도, 지장보살도, 시왕도를 비롯해 도유형문화재 제60호인 옥천사 반종(飯鍾)도 보관되어 있다.
이곳 저곳 둘러보고는 유물전시관 앞에 서서 내려갈 길을 바라보는데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이 흩뿌려지는 모습에 괜히 눈시울마저 뜨거워진다. 내려가기 아쉬워서일까? 그렇게 10여분을 ‘바람 맞으며’ 서 있으니 괜히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우쭐함마저 들면서 한편으로는 한편의 시라도 읊조리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약수 한모금을 들이키고 하산길에 접어든다. 가을을 마음껏 만끽했다는 풍족감과 함께 ‘어설픈 겨울’이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 함께 밀려드는 이유는 뭘까? 총각기자도 어느새 가을을 타기 시작한 모양이다.
참! 옥천사 좌우에 떨어져 있는 백련암(白蓮庵)·청련암(靑蓮庵)을 잊으면 안된다. 또 옥천사 오르는 길 샛길에 있는 연대암(蓮臺庵)도 꼭 찾아봐야 한다. 불교와 사찰과 가을이 전하는 ‘삼중주’를 맘껏 들을 수 있기 때문에….

▶ 여행정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차를 한번 이상은 갈아타야 한다. 마산 남부터미널에서는 5분간격으로 운행하는 통영행 버스를 타고 고성 못가서 잠시 머무르는 배둔 정류소에서 하차하면 된다. 고성에서는 마산행 버스를 타고 배둔에서 버스를 갈아타거나 개천까지 바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다만 개천까지 바로 가는 버스는 2시간 간격으로 운행하기 때문에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배둔에서는 수시로 옥천사로 가는 버스가 있는데 개천이나 마암행 승차권을 끊으면 된다. 진주에서는 시외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다닌다.
자가차량을 이용한다면 진주 방면에서는 남해고속도로 사천인터체인지로 들어와 사천 읍내를 가로질러 1002번 지방도를 타고 옥천사에 닿을 수 있다. 마산방면에서는 통영으로 이어지는 14번 국도를 이용하다 진전휴게소에서 약 10km 지점인 배둔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1007번 지방도를 타면 된다.
연화산으로 이어지는 산행도 옥천사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산행을 겸해도 좋다. 옥천사 뒤편 동쪽 산비탈에 있는 백련암을 거쳐 30분 가량 오르면 북쪽 능선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계속 가다보면 왼쪽으로 약간 길이 휘어지는 지점이 나오는데 계속 직진해서 오르면 된다. 정상까지는 대략 3시간 정도 걸리는데 등산로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풀이 무성함을 유의해야 한다. 정상에서 내려올 때는 청련암을 거치게 되어 있다. 연화산 정상을 찾게 되면 옥천사와 백련암, 청련암을 모두 거칠 수 있기 때문에 1석 3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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