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라. 오늘부터 글을 가르쳐 주지. 글을 알게 됨으로써 네 운명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진노인이 중얼거리듯이 하는 말뜻을 어린 옥환으로선 알 턱이 없었다.

다시 한 해쯤 지나고 나서였다. 영리한 옥환은 그새 웬만한 글귀는 읽고 쓸 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도 얼마나 글읽기에 열중하였는지 종일 서고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그러나 진노인 말고는 옥환이 글을 익혀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양쇠(楊釗·나중의 楊國忠)는 옥환의 양오라비였다. 세월을 무위도식으로 보내던 건달이었는데, 인근 무예도장에서 배운 무예 솜씨가 장안에서는 꽤 알려져 있던 인물이었다.

그런 양쇠에게 어느날 옥환은 특별한 부탁을 했다.

“오라버니, 부탁 하나 하겠습니다.”

“무슨 부탁?”

양쇠는, 벌써 처녀티가 나기 시작하는 어린 옥환을 새삼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오라버니는 적어도 장안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발이 넓다고 들었습니다.”

“그야 그렇지. 내 이름만 들어도 모두 겁을 먹지.”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나중에 제가 크면 황궁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황궁으로? 네가 황궁으로?”

양쇠는 새삼스럽다는 눈길로 옥환을 내려다보았다.

“예에, 황궁으로요. 궁녀가 되고 싶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양쇠의 머릿속을 때리고 지나가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런 후 어린 옥환을 다시 유심히 살펴보았다.

“황궁이라…….!”

나이에 비해서 키가 훌쩍 커버린 여동생의 용모와 자태에서 장차 경국지색의 인물로 성장하고 있는 기미를 포착했다.

“그래서?”

“가무(歌舞)를 익혔으면 합니다.”

“가무라…… 그렇다면 좋은 스승을 만나야 될 게 아닌가.”

“거문고도 뜯을 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양쇠의 머리 속으로는 엉뚱한 셈이 번개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다! 훌륭한 궁녀로 키워 내 출세의 발판으로 삼아야 하겠다!’

양쇠는 그 품행은 좋지 않았지만 머리 하나는 민첩하게 돌아갔다. 그는 어린 여동생이 말을 꺼내어 일각도 채 되지 않아 원대한 야망의 청사진을 모두 그려버렸다.

“알겠다. 황궁에서 기예를 가르치는 예관 하나를 알고 있는데, 그에게 특별히 부탁해 보겠다. 그 대신 열심히 배워야 한다.”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기억해 두셨다가 공부가 끝나거든, 저를 황궁으로 넣어 주십시오.”

두 양남매는 서로의 눈빛에서 불타는 야망을 각각 읽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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