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젓한 섬 눈길 붙잡고 색동 입은 임 발길 휘감고

주말과 휴일이면 ‘근철아 어디가’ 취재 때문에 거제에 있는 집을 제대로 다녀오지 못한다. 그러면 동생이 보고 싶은 형은, 또 형이 보고 싶은 동생은 목요일이나 금요일만 되면 “이번주는 올 수 있나”하고 묻는다.
그러고보니 추석을 제외하고는 거제를 다녀온지가 꽤 된 것도 같아서 거제의 ‘10대 명산’ 중에서 산방산(山芳山·507.2m)을 택했다.
국사봉도 좋고, 계룡산도 좋고, 대금산이며 옥녀봉도 좋은데 산방산을 택한 것은 산방산의 단풍이 특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거제의 여느 산이 그렇듯 시원하게 바라다보이는 푸른 바다와 군데군데 떠 있는 오밀조밀한 섬의 모습, 트인 전망이 필수조건이라면, 산방산의 단풍은 선택 받은 조건이랄 수 있다.
일요일이라 일어나기 싫어하는 형과 동생을 닦달해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서는 기분이 상쾌하다. 모처럼 삼형제가 함께 나서는 것도 유쾌한 일이지만, 차가 없는 ‘근철이’는 매번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기에 이번 만큼은 형 차를 빌려타며 느긋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산방마을’을 향해 꼬불꼬불 난 길을 이리저리 헤매며 다니는데 지도를 보고 찾기가 영 쉽지가 않다. 이정표를 긴장한 상태로 지켜보며 ‘둔덕면’이라는 글귀가 보이자 이제야 안심이 된다. 가게에 들러 산방산 가는 길을 물어보니 조금만 가면 있단다. 조금만 가면 있다는데 제법 많이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삼거리 지점에서 동생이 “잠깐”하며 외친다.
산방마을은 이미 지나버렸고, 오른편에 작은 입간판이 하나 서 있는데, ‘산방산 등산코스, 옥동코스(←)-산방코스(→)’라는 글귀가 콩알만 하게 보인다.
이럴 때마다 자책을 하는데 “난 왜 이렇게 길눈이 어두운 걸까?” 이왕 지나친 길, 그냥 옥동코스로 정했다. 보현사에서 올라와도 되고, 봉원사에서 올라와도 되고, 옥동이나 산방에서 올라와도 된다. 산이라는 것은 길이 여러갈래라서 헷갈릴 때도 있지만 어디에서 올라도 난이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어쨌든 오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산이 우리에게 주는 배려!
산방산은 둔덕면 산방리에 위치한 산방마을의 뒷산으로 정상에는 큰 바위산 세 개가 하나의 산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봉우리가 세 개라서 ‘삼봉산(三峰山)’이라고도 하는 이 산은 조금의 지식만 알고 간다면 찾아볼 것이 상당히 많은 산이다.
그렇게 유명하지 않을 것만 같은 이 산도 가을이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다들 가을 단풍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다. 환상적인 빛깔로 물드는 단풍을 몸에 두르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섬들의 풍경, 그리고 동서남북으로 각기 다른 그림을 담고 있는 풍경들을 보기 위해서다. 마침 해질무렵이면 환상적인 낙조를 카메라에, 그리고 머리 속에 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환상을 가지고 형은 버려둔 채(?) 동생과 둘이 산에 올랐다. 보기와는 달리 그렇게 만만치는 않을 거라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시작부터 숨이 턱턱 막힌다. 눈으로 보기에도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 정도의 위엄과 권위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산으로서의 매력이 어디서 뿜어 나오겠는가? 비가 올 것만 같은 날씨라 발걸음이 서둘러지다보니 다리마저 통증이 느껴진다. 미처 10분도 오르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런데 또 다른 장애물이 말썽이다. 지난 여름 폭우와 태풍으로 등산로가 많이 유실되었는데 정비가 안된 모양이다. 길게는 가슴 높이까지 자란 풀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도 않고 길도 끊어져 버렸다. 나무들이 꺾이고 부러져 군데군데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고, 부서진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 돌멩이들이며 바위들이 등산로 한 가운데를 떡하니 버티고 비켜주지를 않는다. 풀을 헤치고, 나무를 치우고, 돌멩이며 바위를 치워가며 오르는데 정말 막노동하는 기분이다. 그렇게 이색적인(?) 등산을 하니 중턱 쯤에서 정상 봉우리가 보인다.
숲이 울창하다보니 산에 들어서면서는 보이지 않았는데 제법 자세히 보인다. 참 기이하게 생겼다. 또 힘있어 보이면서도 우아해 보이기도 한다. 마침 정상부에는 단풍이 들고 있어 빨간 치마를 두른 듯 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또 한참을 오르니 이젠 돌멩이 때문에 너무 미끄럽다. 동생은 등산로를 포기하고 풀을 헤치고 오른다. 오히려 더 편하다고 한다. 등산화를 신었다고는 하지만 발이 너무 미끄럽다. 괜히 투덜거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렇게 오르고 보니 산 능선에 닿았다. 왼편으로 정상 0.4km를 가리키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산방마을 4.7km를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더욱 가파르다. 이제껏 온 것 보다는 경사가 두배는 되는 것 같다.
정상이 눈 앞이라 생각하니 발걸음이 더욱 가볍다. 드디어 정상이다. 작은 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정말 사방으로 화려한 풍경들이 눈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풀에 긁히고 나무에 받히고 돌에 미끄러지고 했던 불평불만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산방산을 오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마을이 아담하게 굽어 보이고, 반대편엔 희뿌연 안개 속에 쌓인 바다가 신비스럽다. 훨씬 높아만 보이던 주위 산들은 눈 아래에 펼쳐진다. 맞은편 우두봉에 지난 여름에 찾았던, 고려 의종의 한이 맺힌 ‘폐왕성’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오려고 한다. 발치에 보이는 단풍은 더욱 친근감이 느껴진다. 산을 오르는 보람, 더욱이 힘들게 올라와서인지 정상에서 느끼는 쾌감은 더욱 크다.
이곳 산방산 주위에는 역사가 묻어나는 곳이 많다. 덕봉암·보현암·내원암 등의 절은 물론이고, 산정 10여m 아래에는 무지개터가 있는데 이 곳에는 바위틈에서 물이 떨어져 조그만 바위우물을 만들었으며 이 물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제단 밑에는 벼락바위와 약수터 등이 있고, 임진왜란 때 옥씨(거제에는 옥씨가 많다)가 피란했다는 옥굴, 옥씨가 피란생활을 하면서 베틀을 짰다는 베틀굴, 삼존석불을 모셨던 삼신굴 등이 있다. 특히 이곳에는 다섯가지의 색깔을 가졌다 하여 오색토(五色土)라 불리는 흙이 있다.
카메라에 온갖 장면들을 담고 뻥뚫린 산정에서 맘껏 산의 향취를 즐기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비가 온다는 예보는 있었지만 산에서는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서둘러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경사가 꽤 있고, 돌들이 발 아래를 미끄럽게 해서인지 몇 번씩이나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그래도 산정에서 맛보았던 쾌감 때문에 마냥 즐겁다.
어느덧 해도 기울어져 간다. 아마도 비가 오려는 날씨 때문인가 보다. 몇 시간 후 저녁은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분위기가 반전된 유쾌한 산행 덕분이다.
이번주는 단풍이 정말 아름답게 들었을 것 같다. 기자가 왔던 길을 그대로 오른다면 좀 편하게 오를 수 있을 듯 하다. 왜냐면 길을 다 닦아놨으니까…. 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 단풍이 전해오는 가을 소식, 이번 주는 거제 산방산을 찾아 느껴보자.

찾아가는 길

산방산은 거제시 둔덕면에 위치하고 있다. 자가 차량을 이용한다면 통영을 거쳐 거제대교를 건넌 다음 대교를 넘어 만나는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1018번 지방도를 타면 된다. 15분여를 달리면 둔덕면이고, 이곳 삼거리에서 산방·시목 방향으로 좌회전해 들어가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고현 터미널에서 상둔행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차가 그렇게 많지 않아 다소 불편하다.
산방산 아래에는 숙박시설이 없다. 해금강이나 학동쪽으로 넘어가서 숙소를 구해도 되고, 또는 통영이나 고현에서 숙소를 구해놓고 산에 올라도 좋다.
등산로는 대여섯개가 있는데, 산방마을이나 옥동농장에서 오르는 코스가 가장 시간이 적게 걸리는 코스며, 옥산마을에서 오르는 코스가 가장 험하다.
① 보현사→애바위→삼신굴(부처굴)→옥굴→오색터→ 정상(1시간35분) ② 봉원사→헬기장→정상( 약1시간) ③ 산방마을→신설임도→ 헬기장→정상(약30분) ④ 옥동농장→신설임도→헬기장→정상(약25분) ⑤ 상죽전→무제터→오색터→정상(약1시간) ⑥ 옥산마을→유자농장단지→옥산재정상→대봉산→정상( 약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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