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 곤 사골에 닭고기 고명…소박하면서도 푸짐한 인심

차가워진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길을 걷다 문득 칼국수 집을 봤다. 뜨듯하고 담백한 국물이 먹고 싶어졌다. 작은 가게다. 소박하고 오래된 듯, 그래서 마음 편한 그런 집이다. 출입문에 걸린 발을 들추고 들어서니 맘 좋아 보이는 주인 내외가 나를 맞는다.

   
 
   
 
몇 안 되는 탁자와 의자. 거기에도 나와 같이 푸근한 그 무엇이 그리워 찾아온 손님들이 이미 여기저기 앉아있다. 20대 젊은 연인들, 그들이 먹는 것은 소담한 만두요, 40대 내외의 남자들 서넛, 그들이 먹는 것은 만둣국과 칼국수. 그들의 대화에서 연방 삶의 냄새와 우리네 정이 뭉실뭉실 피어오르고 있다. 주방으로 난 작은 창으로 얼핏 할머니 한 분이 보인다. 오래 전 맛보았던 할머니의 칼국수를 떠올리며 칼국수 한 그릇을 청했다.

뽀얀 국물에 호박, 당근, 양파 그리고 잘게 찢은 닭고기가 듬뿍 올려진 칼국수 한 그릇. 넉넉한 김치, 매콤해 보이는 양념장,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하얀 쌀밥 한 그릇과 함께 금세 눈앞에 차려졌다. 아직 손도 대지 않았는데 벌써 뱃속이 든든해진다. 숨을 크게 들이쉬며 손바닥을 맞비비고는 숟가락을 든다.

면보다 먼저 떠먹은 국물이 구수하고 간간하다. 양념장을 넣지 않았는데도 입맛에 딱 맞을 정도로 맛이 있다. 멸치로만 우려내 만든 맹맹한 국물이 아니다. 문득 칼국수는 제치고 이 국물에 하얀 쌀밥 말아먹고 싶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렇게만 먹어도 내 뱃속은, 내 입은 넉넉히 만족할 듯하다. 스스로를 달래어 칼국수에 양념장을 작게 떠 넣고 살살 비비며 주인 아주머니께 묻는다. 아주머니, 이 국물 뭘로 만든 겁니꺼?

아, 사골을 푹 고아서 만든 사골국물이죠. 주인 아주머니가 말한다. 쇠고기와 사골을 잠잘 때만 잠깐 불을 끄고 하루종일 끓여서 그 국물을 쓴단다. 그렇게 끓이면 나중에는 쇠고기가 국물 속에 녹아들어 없어진다고 한다. 진한 칼국수 국물의 비결은 여기에 있다.

쫄깃한 닭고기와 야채를 칼국수 면과 같이 먹는 맛이 그만이다. 칼국수를 신나게 먹다보니 어라, 그 속에 애들 주먹만한 만두도 두 개 들었다. 이게 이 집의 인심이다. 칼국수를 먹다 만두 한 입 베어 물고 또 칼국수 떠먹고 밥 한 숟갈 먹는다. 화려한 찬은 없지만 몇 가지의 요리를 한번에 먹는 기분이다. 어느새 배는 불러오고 넉넉한 정에 마음도 넉넉해진다.

강천구(52)·이현자(50) 주인 내외가 처남의 가게를 넘겨받으면서 처음 요리를 배워 이 칼국수 집을 시작한지 벌써 23년. 이제 주변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칼국수 집이다. 맛도 맛이지만 푸근한 인심에, 국물부터 면, 만두, 김치까지 모두 직접 만드는 그 정성에 자꾸 찾게된다고 손님들이 입을 모은다. 작은 식당이지만 배달손님까지 합하면 하루 이 집을 찾는 손님이 꽤 많다.

바람도 차고 불황에 마음도 얼어붙는 때, 푸근한 맛과 정으로 몸도 마음도 녹여줄 이 집. 나오면서도 자꾸 돌아보게 되고 또 찾고싶어지는 집이다. 칼국수·만둣국 4000원, 찐만두 3000원. (055)222-7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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