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까지 맑게하는 숲 내음과 시린 계곡물이 반겨

지금은 본격적인 가을이라 계곡이 계절에 어울리지는 않는다. 아침 저녁으로는 꽤 쌀쌀한 날씨에 계곡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니까….
하지만 내년 여름이면 다시 가보아도 후회하지 않을 곳으로 자신있게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성흥사 계곡은 여느 계곡과는 달리 자기만이 가지는 특징이 있다. 경쾌한 소리와 시원한 풍경. 귀를 즐겁게 하고, 눈을 즐겁게 한다. 또 있다. 시원한 계곡물은 손끝이며 발끝까지 즐겁게 한다.
성흥사 계곡은 유난히 짙은 녹음을 자랑한다. 울창한 숲은 그늘을 드리우며 더위를 피하게 해주고 향긋한 향마저 내뿜어 머리까지 맑게 한다. 계곡물은 풍부하다. 찔끔찔끔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쏟아붓는다. 군데군데 너른 바위들은 천혜의 명당자리다. 따로 돗자리를 깔 것도 없이 그냥 바위에 퍼질러 하루를 즐기면 된다.
성흥사 계곡의 장점은 또 있다. 지루하다 싶으면 성흥사를 찾아 불교 문화에 잠시 젖어보는 것도 좋고, 힘이 넘쳐난다면 정상까지 등반을 해도 좋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계곡물에 발 담그며 쉬엄쉬엄 올라도 좋고, 가다못가면 다시 돌아와도 그만이다.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에 온갖 상념을 지워버려도 좋고, 복잡하고 어지러운 기억들을 씻어내 버려도 좋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따라 가볍게 몸을 흔들어 보아도 좋고, 혼자서 와도 아니면 연인이나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와도 좋다. 홀로 왔으면 자연을 벗삼아 도인의 세계에 잠시 빠져보면 되고, 함께 온 일행이 있다면 길벗·말벗이 있어서 좋다.
아직 개발이 안되고, 많이 안 알려져 있어서 좋다. 기사 때문에 소문이 나 버리면 어쩌지 하는 괜한 걱정도 앞선다.
자연은 언제나 인간과 함께 존재한다. 자연앞에 인간은 나약하고 힘 없는 존재일 수 밖에 없지만, 자연을 벗삼아 자연을 가지고 놀 때(?) 만큼은 위대하고 강하다. 자연이 빛을 발하는 것은 찾아주는 인간이 있기 때문이고 기억해주는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내 기억 한 곳에는 ‘깨끗한’ 성흥사 계곡의 맑고 푸른 풍광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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