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저무는 붉은 바다…상념도 욕심도 버렸다

통영 벽방산은 30여곳 가본 곳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기억에 남는 이유도 조금은 별나다. 항상 취재수첩과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비상용 건전지를 준비하지 않아 두 번씩이나 산을 오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벽방산의 아름다움을 맘껏 만끽할 수 있었고, 등산을 즐거움을 더욱 깊이 깨우칠 수 있었다. 어둑해진 산길을 따라 내려오는 ‘무서움’도, 고즈넉이 들려오는 종소리의 ‘신비스러움’도 산을 두 번씩이나 올랐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당시에는 무너진 가섭암의 모습에 마음이 많이 아팠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난히 많은 비가 내렸던 올해, 태풍 ‘매미’의 전주곡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깨끗하게 닦인 임도만 뺀다면 벽방산의 풍경은 비경이다.
또 기억이 남는 것이 있다. 바로 로프를 타고 산을 내려왔던 것인데, 로프가 메어져 있어 그 로프를 부여잡고 산을 올랐던 기억은 대학때 합천 매화산 남산 제1봉을 올랐던 것이 유일하다. 그런데 간만에(?) 로프를 잡고 암벽을 오르락 내리락 하니 진짜 산꾼(?)이 되는 기분에 잠시 우쭐해지기도….
아담한 의상암도 잠시 쉬기에 좋고, 솔숲에 둘러싸인 안정사도 벽방산을 찾은 의미를 더해 준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 또한 이색적이다. 어둠이 찾아오는 정상에서 바라보는 통영항의 모습은 지울 수 없는 그림으로 기억 속에 남는다. 특히 저물어가는 태양빛에 노출된 붉은 바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수 밖에 없다.상념도 욕심도 훌훌 털었다
당시에는 준비 소홀로 산을 두 번씩이나 탄 내 자신을 엄청 질책했었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놈이라며 산을 다시 오르는 내내 마구 헐뜯고 욕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그 때문에 벽방산을 두루두루 보고 느끼고 기억속에 담아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지워지지 않는 여행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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