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영그는 ‘도심 속 쉼터’

하늘을 보니 이제 정말 가을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말 맑고 청명하며 구름 한 점 없다. 불과 20여일 전에 태풍 ‘매미’가 할퀴고 지나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원래 이번주는 경주로 여행지를 잡았었다. 하지만 엉뚱한 불상사가 생기는 바람에 급하게 여행지를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이유인즉슨 현금 카드를 분실했기 때문이다. 토·일요일이면 굳게 닫혀있는 은행 문 앞에서 손에 통장을 들고 하소연 해봤자 별 수 없다(물론 신용카드로 365일 코너에서 현금 서비스를 받는 방법은 있다).
그래서 선택을 한 곳이 진주 ‘망진산 봉수대’. 진주에서 10여년 넘게 살았으면서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대학 때 교수님 한분이 쉽게 갔다올 수 있고 올라가보면 좋은 곳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어서 택했다. 망진산 봉수대는 진주 8경중 제 5경에 속한다.
망진산은 진주 망경동에 위치한, 망경초등학교 뒤편에 있는 작은 산이다. 그냥 뒷동산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만큼 야트막한, 200m도 안되는 정말 낮은 산이다.
진주에는 이곳 망진산에 있는 망진봉수와 명석면 광제산에 있는 광제봉수가 있었다고 하는데, 광제봉수는 그 흔적만 약간 남아있고, 망진봉수도 96년 8월 14일에 복원되었다.
망진산 봉수대는 조선초기에 건립된 봉수대인데 고종 32년인 1895년 폐지되기 전까지 수백년동안 우리나라의 통신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특히 망진산 봉수대는 5개 직봉노선 가운데 동래 다대포진에서 목멱산(현 서울 남산)에 이르는 제2노선의 보조노선으로서 남해 금산과 사천 안점의 봉수를 받아 광제산 봉수대로 이어주는 곳이었다.
또한 망진산 봉수대는 1894년 동학농민항쟁과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에도 사용되었으며, 일제 시대에 훼손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망진산 봉수대의 매력은 진주 중심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널따란 길을 따라 올라오다보면 칠암동 일대가 시원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것은 부분에 불과하다. 봉수대에서 바라보면 오른편으로 남강교와 동성동 일대(진주의 오래된 중심가)가, 왼편으로는 천수교와 신안동·평거동 일대가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으로 뇌리 속에 남는다.
모두가 내 발아래 있다는데 크나큰 쾌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두 교량을 지나는 남강의 활동감 있는 움직임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오후께면 천수교 방면이 더욱 아름답다. 해가 중심축에서 서서히 기울여가면서 남강 위로 흩뿌리는 금빛·은빛 가루는 장관이다. 그 빛을 더해 남강은 힘차게 움직이면서 진주를 두동강 내며 자기 갈 길을 간다.
봉수대는 복원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깨끗하다. 봉수대 주위로 심어져 있는 잔디도 아직 깨끗하고 푸르다. 가방을 잔디밭에 내려놓고 봉수대 벽면을 손으로 만지며 걸어보니 이건 완전히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 기분이다.
마침 젊은 한쌍이 한적한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는데, 수염도 덥수룩하게 난 총각 혼자서 이곳을 오르니 이상하다 싶어 자리를 피한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재밌는 시간 보내시구려….’ 혼잣말로 쓰린 속을 다스려본다. ‘굳이 피할 필요는 없는데….’
봉수대 앞에는 제단이 마련되어 있고, 제단 바로 앞 테두리에는 돌이 놓여있는 자리가 6개 있는데 5곳에는 돌이 놓여있고 한 곳은 비어있다. ‘한라산돌(96.7.14)’과 지리산 노고단에서 채취해온 ‘지리산돌(96.7.17)’, 월아산 정상에서 가져온 ‘진주돌(96.7.13)’, 백두산 정상에서 옮겨온 ‘백두산돌(96.7.5)’, 그리고 ‘독도돌(96.7.1)’이 있다.
다만 ‘금강산돌’ 자리에만 돌이 비어있고, 돌을 가져온 날짜 대신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조국 통일의 그 날이 오면 이 자리에 금강산 돌을 바칠 것입니다.’ 갑자기 짜릿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싸며, 마침 지난달 대구에서 열렸던 하계U-대회가 생각났다. 북한 응원단과 함께 한 마음 한 몸이 되어 했었던 통일 염원 응원전.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이것을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들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 망진산 봉수대는 진주문화사랑모임 등 민간단체가 중심이 되어 복원에 힘을 기울였다. 광복 50년인 1995년 통일 기원 전국봉화제의 일환으로 민간단체들이 망진산 봉화제를 올렸고, 복원을 위한 시민운동을 펼쳐 봉수대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했었다. 그렇게 해서 2000여명의 시민이 참여했고 6521만5000원의 성금을 모아 문화재 전문위원들의 감수와 고증을 거쳐 봉수대 모형을 확정지어 다시 세우게 된 것이다.
원래 망진산 봉수대는 정상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정상에는 모 방송국 송신탑이 설치되어있어 바로 아래인 이곳에 복원되게 된 것이다.
등산을 생각했다면 시시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노약자나 어린이, 가족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도심 속의 공원’을 생각하면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등산까지는 아니지만 이곳 망진산에서 경상대학교 뒷산까지 능선을 타고 가는 것도 재미있다. 경상대학교 뒷산은 학생들이 쉼터 삼아 자주 찾는데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망진산과의 거리는 쉬엄쉬엄 1시간 가량 걸린다.
너무 쉬운 여행지를 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꼭 먼 곳을, 꼭 높은 산을, 꼭 명승지만을 여행지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음 먹기에 따라 시내 중심가도 여행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실제 그렇다).
언젠가 후배 기자가 이런 말을 했었다. “‘도심 속의 휴식처’ 소개하면 좋을 건데예… 그리고 무학산(마산)도 한 번 가입시더….” 그 말이 불현 듯 떠오른다. ‘그래! 언제 무학산도 한 번 가자.’ 돌아서는 발 걸음 뒤로 무심히 서 있는 송신탑이 얄밉게 보인다. 그리고 두 교량을 끼고 남강은 쉼 없이 줄곧 흐르고 있었다.

▶ 여행정보

진주 망진산은 남강변에 위치해 찾기 쉽다. ‘서부경남의 중심’이라 마산이나 부산, 그리고 인근에서도 교통편은 버스·기차 등 넉넉한 편이다. 버스를 이용한다면 경상대학교 인근의 게양 정류소에서 내리지 말고 진주역 사거리를 지나자마자 위치한 진주 남중학교 앞에서 내리면 된다. 원래 세워주는 곳이다. 굳이 터미널까지 들어갈 필요가 없다.
남중에서 택시를 타도 2000원 정도 밖에 안나오는 거리인만큼 쉬엄쉬엄 걸어서 가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길을 물어물어 가면 넉넉잡아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망경초등학교를 물어서 가거나 봉수대 아래에 위치한 월경사를 물어서 가면 된다.
식사나 숙박은 남강변 주위나 시내에서 해결하면 된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불편한 점은 없을 듯하다. 마침 이번주에는 ‘개천예술제’가 열리기 때문에 더 많은 볼거리가 있을 것 같다. 봉수대에서 예술제 전경을 내려다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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